속도전식 도시재생사업은 첨예한 갈등과 붕어빵 개발을 낳았을 뿐이다. 5년 만에뚝딱 해치우는 뉴타운이 그렇다. 일본의 롯폰기힐스는 10년 넘는 주민과의 협상 결과물이다.
신은 자연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할 정도로 도시는 인간의 최대 창조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치자가 거주하는 궁성을 도(都)라 칭하고 정치ㆍ행정의 중심, 사상의 터전이 되어왔다. 여기에 물건을 사고파는 유통거래기능의 시장(市場)이 합해져 이른바 도시(都市)가 이뤄졌으니 인간생활의 모든 것이 행해지는 복잡다단한 공간인 셈이다. 유사 이래 끊임없이 도시 조성에 따른 병폐를 치유하고 새로운 개념의 도시 진화를 시도하는 이유다.
최근 본지가 개최한 ‘디자인포럼 2012’ 행사에 참석한 건축거장 안도 다다오 교수(72ㆍ도쿄대)가 밝힌 도시재생의 회고는 이런 면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각국의 도시재생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기존 커뮤니티 주민들과의 협력문제, 정부의 개입 여부 등을 놓고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는 도쿄의 대표적 도시재생 산물인 롯폰기힐스나 오모테산조 프로젝트 등이 10년 넘게 주민과 관청이 협상을 벌인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라며 시간을 갖고 타협하는 자세를 우선적으로 강조했다. 또 롯폰기힐스 인근에 추진 중인 80만㎡ 규모의 도시재생단지 역시 본인이 직접 3개월에 한 번씩 설명회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자신의 얘기조차 듣지 않았던 주민들이 5년 정도 지나고 나니 이제 서로 얘기가 통할 정도가 되어 추진에 시동이 걸렸다고 말했다. 도시재생사업에 있어서 주민과의 소통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서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시간적 여유가 절대 필요함을 교훈으로 보여준다.
요즘 용산 도시재생프로젝트를 놓고 주민, 시행기관들이 벌이는 이전투구식 행태나 서울시 뉴타운 출구전략을 놓고 빚어지는 조합원 간 갈등, 신도시 건설 등에 따른 주민 보상 다툼 등에 적절한 고언이다. 용산은 31조원대의 거대사업을 벌이면서 사업기간을 고작 2016년까지로 잡았다. 뉴타운 역시 5년 만에 뚝딱 해치울 태세로 접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도시재생은 으레 전면개발 방식이 모델인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낡은 것은 온통 버리고 새것으로 채워넣어야 한다는 인식을 이젠 재고해야 한다.
주민들이 커뮤니티를 유지, 보존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15년 이상의 사업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안도 교수의 여유(?)는 지금 당장 우리에게 절실하다. 속도전식으로 도시재생사업을 하다 보니 주민과의 마찰은 극에 달하고 붕어빵식 재생만 계속되고 있다. 기존의 커뮤니티를 깨지 않으면서 가장 사람냄새 나는 도시재생이 절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부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안도 교수는 오늘날 일본의 실패는 밖을 보지 않으려는 성향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많은 선례를 보고 이것을 차용해 좋은 환경을 만들어내려는 공공의 역할이 중요한데 일본 사회는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공원 밑 지하에 박물관을 만들면 많은 사람이 공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 내부 규정만 강조하다 보니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규제에 억눌려 프로젝트에 시대의 흐름을 반영치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소가구 전월세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도 가진 자들의 주택투기라는 고전적 족쇄에 걸려 다주택자 중과 세제조차 풀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 역시 유사 사례다. 미래지향적 도시재생은 고령화, 저출산, 자원고갈 등이 함께 녹아들어간 100년 이상 유지되는 우리 모두의 공유자산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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