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화학제품 제조공장에서 발생한 불산가스 누출 사고 2차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사고로 공장 근로자 5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을 입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지만 문제는 사태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들은 피부 발진과 호흡기 이상 증세를 보이고, 주민 수백명이 호흡곤란과 복통 등을 호소하고 있다.
사건 발생 1주일이 넘은 4일 현재 구미시 산동면 사고지역 일대 들판과 임야가 푸른색을 잃고 누렇게 변하고 말았다. 인근 농가와 공장 근로자들은 유독성 가스에 노출된 채 장시간 방치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멀쩡하던 소ㆍ돼지 등 수천 마리의 가축이 잦은 기침에 코를 줄줄 흘리며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고 과수원은 물론 비닐하우스 시설작물까지 속수무책으로 집단 고사된 상황에 처했다.
불산은 LCDㆍ반도체의 세정에 사용되는 화공약품으로, 기체 즉 가스 상태로 체내에 흡수되면 호흡기 점막을 해치고 뼈를 손상시킬 수 있으며 신경계를 교란시킬 정도의 유독성 물질이라고 한다. 불산은 사고 가능성이 높고 사고가 나면 피해가 큰 ‘사고대비물질 69개 품목’에 포함될 정도로 맹독물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고현장은 물론 사고 후에도 불산에 대한 인식은 무지 그대로였다. 소방대는 가스를 없애려고 물만 뿌려대기에 급급했지 중화조치는 아예 엄두도 못 냈다고 한다. 사고 발생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가로수가 말라죽는 등 피해가 커지는데도 당국은 현장 실태조사조차 손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다.
필요하면 인근 주민이나 공장 근로자들을 당장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사고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야 한다. 사고지역 일대가 거주지로서 적합한지 여부도 엄격하게 가려야 할 것이다. 특히 사고 지점에서 불과 수km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구미ㆍ해평 등 취수장은 물론 지역주민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시설이 적지 않다. 구미산업단지는 1991년 페놀 원액이 낙동강으로 유출돼 영남권 일대가 수돗물 오염 등 사회적 혼란이 컸던 곳이다.
구미산업공단뿐만 아니라 여타 산업단지에도 화학물질 제조업체가 즐비하다. 국내외 사례에서 보듯 화학물질, 특히 유독성 가스 유출 사고 등은 설마 하는 사이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일쑤다. 철저하게 피해내역을 조사해 빠짐없이 보상하고 차제에 유해화학물질 관리실태를 전국에 걸쳐 일대 점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