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가다가는 후보들 얼굴만 쳐다보고 대통령을 뽑는 전례 없는 ‘깜깜이 선거’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대선일이 불과 7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책 공약은 보이지 않고 이미지 경쟁에만 몰두하니 드는 생각이다. 지금 나라 안팎 상황은 그야말로 백척간두(百尺竿頭)란 표현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예쁘고 자상하고 멋진 이미지 연출에만 신경 쓸 뿐 장ㆍ단기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겠다는 건지 말이 없다. 겉으로는 정책선거를 하자면서도 기껏 경제민주화니, 일자리 마련이니 하는 총론적 입장만 나열할 뿐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그렇다. 유럽 재정 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의 먹구름은 언제 걷힐지 기약이 없다. 중국과 일본 간 일촉즉발의 영토분쟁으로 동아시아 정세가 연일 요동을 치고 있다. 안으로는 백주에 괴한이 학교에 난입하고 길 가던 여대생이 이유 없이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경제난 극복 해법을, 국방과 안보 정책의 방향을, 치안과 안전 대책을 후보들로부터 차분히 들어본 적이 없다.
선거전이 가열되면서 각 후보들은 민심을 잡겠다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민심은 얼굴만 내보인다고 잡히지 않는다. 가슴에 와 닿는 실천적인 정책을 내놓고 이해당사자들이 고개를 끄덕일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시장에서 상인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역설하지만 정작 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얼어붙은 경기를 풀어줄 방안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떡볶이 서비스를 한다고 저출산과 육아, 여성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얀 와이셔츠 위로 전투복 상의를 걸치고 병사들과 기념사진 한 장 찍는 것보다 국가 방위에 대한 정책 공약을 국민들은 듣고 싶어 한다.
더 답답하고 한심한 것은 그나마 준비한 공약조차 발표 시기를 최대한 늦추며 눈치보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발표하면 상대 진영의 공격은 물론 몇 가지 살짝 덧붙여 공약을 베끼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공약검증도 없이 그냥 선거를 치르자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거가 이미지 경연(競演)으로 치달으면 네거티브가 득세하는 이전투구 판이 될 수밖에 없다. 각종 정책 이슈를 주도하고 이를 후보의 지지도로 연결시키는 노력이 뒤따라야 비로소 정책선거, 선거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있다. 무엇보다 어설픈 이미지와 달콤한 말로는 결코 표를 얻을 수 없다는 인식을 유권자들이 분명히 심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