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쓰는 1만원권 지폐에는 세종대왕 초상이 있다. 새 행정수도 이름도 세종시고, 첫 국산 이지스함 이름도 세종대왕함이다. 서울의 가장 중심에 세종로가 있고, 그곳의 중심엔 세종대왕상이 있다. 마치 대한민국 전체가 세종대왕을 존경해마지 않는 듯하다. 온갖 좋은 것에는 다 ‘세종’을 붙였으니.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는 1만원권 지폐를 ‘배춧잎’이라고 더 많이 부른다. 새 행정수도인 세종시도 ‘비효율 덩어리’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세종대왕함에 처음으로 실전배치한 대잠미사일 ‘홍상어’는 제대로 실험도 하지 않은 엉터리란다. 서울의 중심이라는 세종로에는 한글보다 영어 간판이 더 많다.
10월 9일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을 기념한 한글날이다. 법률에서 정한 단 5개의 국경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전혀 국민적 관심이 없다. 대통령은 참석은커녕 경축사도 없고, 그나마 경축사를 내던 국무총리는 해외출장 중이다. 한때 세종대왕상 앞에서 대선출마 선언 경쟁을 하고, 세종의 리더십을 외치던 정치권도 한글날, 한글과 관련된 발언은 전무다.
3ㆍ1절과 8ㆍ15가 일제로부터의 민족해방이란 의미가 있다면, 한글창제는 한자로부터의 언어해방이란 의미가 있다. 언어해방은 곧 사고해방이다. 언어해방이 없었다면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이뤄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머릿속에 한글날은 오로지 ‘일에서의 해방’을 위한 공휴일 지정 여부만 가득하다.
한글날뿐 아니다. 한글에 대해서는 더 하다. 한글교육을 그저 문자교육인 줄로만 안다. 한글을 못해도 영어만 잘하면 배운사람 대접을 해준다. 상당수 젊은 세대들 사이에 맞춤법이 안중에 없어진 지는 오래다.
이쯤 되면 세종대왕을 존경하는 게 아니다. 그저 ‘얼굴마담’으로 대놓고 농락하는 꼴이다.
차라리 존경하는 척이나 하지 말지, 차라리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하지도 말지, 2012년 10월 9일 대한민국인들 한글에, 세종대왕에 해도 너무하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