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項羽)가 초(楚) 의제(義帝)를 죽임으로써 명분을 잃었다는 게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의 평가다. 조선 초 사림이었던 김종직은 이를 따라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었다. 김종직의 제자이자 사관(史官)이었던 김일손은 이 글을 단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세조(世祖)의 실록에 넣었다.
연산군 4년, 실록의 조의제문이 선대왕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훈구파는 이와 연루된 사림을 대거 숙청했다. 무오사화(戊午士禍)다. 역사 때문에 일어나 사화(史禍)로도 불린다. 세조의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세종 대에 키운 인재 상당수를 잃은 조선은 이 사건으로 성종 때 키운 인재까지 잃었다. 그리고 채 100년도 안 지나 조선은 무기력하게 임진왜란을 맞는다.
단종이 세조에 왕위를 스스로 넘긴 것일까, 아니면 세조가 빼앗은 것일까. 당대에 상왕(上王)에서 노산군으로, 그리고 서인까지 강등됐던 세종대왕의 장손 이홍위(李弘暐)는 후대인 숙종 때 단종으로 추존되며 신분을 회복한다.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공개 여부가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논쟁거리다. 사실상 해양경계선인 NLL(북방한계선)과 주한미군에 대한 정책과 인식은 대선 때마다 뜨거운 감자였다. 새누리당은 공개해서 전직 대통령의 잘잘못을 따지자고 한다. ‘노무현’에 동조했던, 그리고 이번 대선에 상대방이 된 이들을 이 기회에 색출해낼 태세다. 단독으로 법을 만들 수 있는 국회 과반의석 때문일까.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현 정부 관계자가 법으로 봉인된 전직 대통령의 기록에 어떻게 접근했는지는 따질 생각도 없어 보인다.
동시대의 기록을 동시대인이 평가하는 것은 역사에서 금기다. 정치권력의 역사는 더 그렇다. 정치보복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교사안은 상대방이 전직이 아니라 아직 현직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민감하다. 비밀 해제를 15년, 20년씩 걸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긴 정치보복이 되지 않을, 외교문제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법을 바꿔 전직 대통령의 기록을 공개할 수도 있겠다. 물론 형평을 위해 전직 대통령 기록은 모조리 공개해야 한다. 그러면 아마 내년 이맘 때쯤엔 이명박 대통령 기록물 분석에 한창일 것이다. 6년 후에는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 기록물을 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홍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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