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정부중앙청사에 60대 남성이 무단 침입, 방화를 하고 투신자살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앙청사는 정부 부처의 심장부이자 국가 행정을 총괄하는 핵심시설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이 남성이 가짜 신분증으로 청사 출입구에서부터 18층 교육과학기술부 사무실에 이르기까지 3, 4중 보안시설물을 통과하면서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인화물질을 넣은 큼지막한 가방까지 소지한 상황에서 후문에서는 경비경찰 앞에 버젓이 가짜 신분증을 내밀었고, 1층 검색대는 아예 무인지대여서 뚜벅뚜벅 들어갔다고 한다. 특히 이 검색대는 평소 외부침입자나 위험물질 소지 등을 탐지하는 곳이다. 더 가관인 것은 전자입력장치가 부착된 출입증을 터치해야 열리도록 돼 있는 마지막 관문인 보안게이트에서는 1명의 근무자가 있었지만 개폐장치를 아예 풀어놔 역시 가짜 신분증이 먹혀들었다는 점이다.
정부청사 무단침입 방화 및 자살사건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치스럽고 끔찍한 일이다. 휴일일수록 더 엄격해야 할 보안시설 관리가 이토록 허술했다는 점에서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몇 해 전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방화범의 소행으로 한순간에 소실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얼마 전에는 역시 국보급인 구례 화엄사 각황전이 방화로 전소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런 방화사건 외에도 국민들이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일이 너무 빈번하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지금은 북한 병사가 최전방 우리 군 초소 생활관 문을 두드리고 귀순한, 이른바 ‘노크귀순’ 사건으로 구멍 뚫린 국방경계태세가 국민적 지탄을 받는 상황이다. 최근 몇 달 동안만 따져도 잔혹 성범죄 및 살인 사건과 ‘묻지마’ 살상행위, 대낮 초등학교 난입 흉기난동 사건이 전국 전역에서 터졌다. 법과 질서를 비웃는 풍조는 치안행정의 빈틈이 낳은 결과나 마찬가지다.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책임진 이들이 폭력조직과 연계돼 마약을 취하고, 국가산업단지에서 유독가스가 대량 누출돼도 열흘이 넘도록 수수방관한 행정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공직 기강에 대해 일대 점검이 필요하다. 사건 사고 끝에는 거의 예외 없이 초기대응 미숙이 남고 뒷북행정의 문제가 불거진다. 그만큼 우리 공직사회의 근무기강이 풀어질 대로 풀어졌다는 방증이다. 아무리 정권 말기라고 하지만 이대로 둘 순 없다. 사건 사고가 터지면 뒤늦게 탄식하고 호통만 쳐대는 대통령 역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