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회담이다, 공개회담이다’, ‘녹취록이 있다, 없다’, ‘폐기했다 안했다’
2007년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싼 여야간 정쟁이 꼭 ‘아사리판’이다. 국가안보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국민들 눈에는 뭐가뭔지 잘 들어오지 않고 당리당략만 보인다. 외교적 파장이나 역사기록 열람 원칙의 훼손 등 정략에 희생되어선 안될 금기의 영역까지 마구 헤집고 있다. 그렇게 자랑하던 국격은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은 듯 하다.
왠만하면 지켜야하는 금기들이지만, 상황이 이쯤되다보니 더 이상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 이젠 사실을 분명히 해야할 때다. 카이사르도 금기-당시 로마법은 무장한 군대의 로마본토 진입을 금지-를 깨뜨렸지만, 어쨓든 그로 인해 로마의 분열이 종식됐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인식은 굳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보지 않아도, 공개발언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상회담에는 어울리지 않는 ‘막말’을 했느냐를 확인하자는 것인데, 이렇게들 난리니 어쩔 수 없다.
불과 5년전 정상회담 기록을 공개하는 참담한 현실에 직면했지만,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국정원에 보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은 사실 국가기록원에 보관해야 할 전직대통령 지정기록물과 거의 같다. 따라서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조건인 국회 재적의원 2/3 찬성, 즉 여야합의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대선을 앞둔 상황이니 두 대선후보의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 문재인 민주당후보는 이미 이번 사태와 관련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박근혜 새누리당후보의 동참을 요구했다. 문 후보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든 아니면 여야가 합의할 만한 새로운 조건을 내걸 던 이젠 박 후보의 결단이 중요하다. 더 이상 면책특권을 ‘방패’ 삼은 정문헌 의원이나, 여권 관계자라는 ‘익명의 베일’ 뒤에서 나 몰라라 해서는 안된다.
아울러 이번 사태가 커진 데는 여든 야든 어느 한쪽의 ‘거짓’이나 ‘억지’가 작용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이 밝혀지면 그에 따른 법적,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한다.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야할 자료가 어떻게 국정원에는 그대로 남아있는지, 국가일급기밀에 해당되는 자료들에 몇몇 정치인들이 어떻게 접근했는지도 따져야한다. 불과 얼마전 통합진보당 사태 때 ‘종북세력’의 국가기밀 접근에 우려하던 기존 정치권이다. ‘종북’이건 아니건 국가기밀에 대한 보안은 법에 입각해 누구에게나 적용돼야 한다.
춘추시대 중국에 ‘깊은 물속에 사는 고기를 본 사람에게는 상서롭지 않은 일이 생기고, 깊은 곳에 감춰 둔 일을 알게 된 사람에게는 재앙이 생긴다(察見淵魚者不詳 知料隱匿者有殃)’는 말이 있다. 굳이 연어(淵魚)를, 끝내 은닉(隱匿)된 자료를 보자 했으니 상서롭지 읺은 일이나 재앙을 감수하는건 당연하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