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금 횡령, 땅 사기 등 공직 비리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남, 경북, 서울 등 전역에서 억대는 예사고 수십억원대의 비리가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다. 나사가 풀릴 대로 풀린 공직사회다. 불거진 비리들을 보면 하나같이 근무기강만 잘 점검해도 충분히 사전예방이 가능한 것들이다. 한마디로 안이한 공직 자세가 비리를 일삼고 방조하고 키운 셈이다.
여수시 회계과 8급 공무원인 김모 씨는 급여, 소득세, 상품권 등 주요 업무와 관련된 서류를 위조하는 수법으로 3년에 걸쳐 76억원을 빼돌렸다. 기가 막히는 것은 급여를 부풀리는 등 한 달에 2억원씩을 가짜 서류로 결재했음에도 단 한 차례 지적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김 씨는 상시 모니터링이 가능한 정부의 온라인 재정관리시스템(e-호조) 대신 수기방식을 고집해왔다. 상급자가 이를 지적하자 “수기가 더 빠르고 정확하다”며 고집을 부려도 그 누가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김 씨의 비위보다 총체적 관리감독 시스템 부실의 잘못이 더 크다. 전남도의 정기 감사, 시의회 행정사무감사, 시 자체 감사 등 10여 차례 감사는 있으나 마나였다. 더구나 아내가 사채를 빌려 돈놀이하다 수십억원대의 빚더미에 앉자 공금에 손을 댄 김 씨가 회계 분야에 7년씩이나 근무해온 것도 납득이 안 된다. 감사원이 나서지 않았다면 김 씨의 비리행각은 진행형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여수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통일부 8급 직원인 이모 씨는 관인을 무단으로 찍어 만든 가짜 출금전표를 내미는 수법으로 3년간 172차례에 걸쳐 3억원의 공급을 빼내오다 역시 감사원 감사에 적발됐다. 이 씨의 상급자는 이런 사실을 알고도 횡령금액 반납만 요구했을 뿐 상부 보고도 형사고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경북 예천군청의 기술직 7급인 권모 씨는 공유지 매각을 내세워 주민 등의 돈 46억3000만원을 가로챘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민감한 도청 이전 예정지 주변의 군 소유 땅을 미끼로 활용했지만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뒤늦게 행정안전부가 시ㆍ군ㆍ구 전수 감사를, 감사원이 암행감찰ㆍ상주감찰ㆍ불시점검 등 대대적인 고강도 전 방위 특감에 나선다고 한다. 과연 어떤 결과를 낼지 궁금하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우선 회계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고 허술한 부분은 보강하되 상시 관리체제부터 제대로 확립하기 바란다. 세금 도둑질 등 비열한 공직 비리만큼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벌백계가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