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면을 통해 계수나무의 달콤한 향기로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고 그 나무 아래로 여러분에게 행복한 초대를 한 지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새 가을은 깊을 대로 깊어졌다. 가을은 바람을 따라 깊어지는 듯하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서늘하지만 푸근했던 바람은 어느새 서늘한 기운으로 바뀌어, 그 바람 따라 우수수 우수수 낙엽이 진다. 지천에 계수나무 향기를 품었던 대기는 바람결어 그윽한 들국화 향기를 전해준다. 그리고 그 가을바람 따라 산등성이엔 억새가 일렁인다.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했던가.’ 이 옛 노랫가락의 으악새는 억새이며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그 모습이란다. 가을은 그 모습처럼 아름답고도 쓸쓸하고 애잔하다. 화려한 단풍은 더 이상 생장의 포기 순간이며 낙엽과 모진 추위가 기다리고 있음이며, 풍성하게 부풀어 오른 억새의 솜털들은 애써 결실을 하여 맺은 씨앗을 바람에 실어 날려 보내고자 함이니 결국은 이제 억새도 오늘의 자신을 버리고 후대를 기약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실은 하얗게 부푼 이즈음의 억새를 보고 억새꽃이 피었다고 하면 잘못이다. 이 순간은 꽃은 이미 지난 초가을에 피어 꽃가루를 날리고 꽃가루받이에 성공한 꽃들이 열매를 만들어 퍼트리는 순간이니 억새가 핀 것이 아닌 진 것이 맞는 것이다.
바람에 몸을 맡긴 억새는 생각보다 참으로 강인한 식물이다. 줄기는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으며 늘씬한 잎사귀는 함부로 손을 베일 만큼 날카롭다. 바람에 실을 만큼 스스로를 가볍게 한 씨앗은 수십 킬로를 날아갈 만큼 집념어리다. 그것으로 모자라 땅 속은 더욱 견고한데 깊은 뿌리에는 땅속으로 뻗어가는 줄기가 있어 마디마디 새로운 개체를 땅위로 올리며 점유면적을 넓혀간다. 그래서 억새가 무리를 이루면 다른 식물들은 살기 어렵다. 이렇게 억세서 이름도 억새이다.
하지만 이런 무성한 억새도 크게 자란 나무가 그늘을 가리면 살지 못하고, 야고라고 하는 작고 연약하고 고운 기생식물에 양분을 내어주고 살기도 한다. 아무리 강해보이는 사람도, 아무리 어려운 현실도 무엇이든 절대적인 것은 없는 진리는 풀에도 나무에도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모두 공평하게 적용된다.
바람 따라 억새 따라 산길을 걷노라면 진리와 순리가 마음에 닿는다. 요즈음 공감을 크게 얻는 힐링의 시간은 큰 나무 숲길은 물론이지만 이렇게 산자락의 억새밭에서도 가능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