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런 때가 있었던가.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상 최고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진입했고, 경제협력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의 멤버가 되었으며,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와 인구 5000만명을 동시에 돌파하며 선진국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20-50클럽’에도 가입했다. UN사무총장을 배출하였으며, 얼마 전에는 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이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한류열풍이 일어난 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최근에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음반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국가 신용등급이 상승하는 쾌거도 이루었다. 한국이 마치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이 흐름을 타고 바야흐로 복지도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문제는 지난해만 해도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엇갈렸던 사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새 여야가릴 것 없이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수조원이 왔다갔다하는 대형복지사업들이 비교적 쉽게 결정되고 있는 모습이다. 바야흐로 기마민족의 후예답게 속도감 있는 복지를 펼치고 있다.
복지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국민 행복과 직결되어 있기에 복지 확대에 기를 쓰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논리도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복지 정책을 위해 필요한 재원 마련에 대한 대책이다. 재정 당국은 얼마 전 벌금과 과태료를 더 걷어 내년의 세수 부족분을 해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같은 방법은 ‘언 발에 오줌누기’와 같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결국은 세금 인상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득 상위계층에게 세금을 더 부과한다고 하더라도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국민들이 심각한 경기침체로 지갑이 얇아진 상황에서 세금을 흔쾌히 더 부담해줄 지는 미지수이지만 복지를 확대할 생각이라면 달리 뾰족한 해법을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세금을 더 걷고, 정부 세출구조를 복지중심으로 대폭 바꿔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재정적자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고개를 든 복지확대 분위기가 대선 정국을 계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선 후보들의 복지 경쟁을 선진 복지국가로 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우려스러운 부분 또한 적지 않다. 복지는 일정 부문 정치에 의해 탄력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정치ㆍ정략적으로 이용되다 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의 복지 경쟁이 어디까지 갈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차제에 이번 대선을 계기로 스웨덴과 같은 선진복지국가를 따라 잡을 수 있다면 그것도 과히 나쁜 일이 아니다. 우리에겐 지난 시절 단기간 내 고도성장을 이룬 저력이 있지 않은가.
다만 선진 복지국가의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한 경주에서 페이스 조절에 실패할까 걱정이다. 속도가 늦어도 문제지만, 초반에 너무 질주를 하다가 후반에 체력이 고갈되면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선진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복지경쟁을 환영하지만 안전 속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후손들에게 안정적인 복지 혜택을 물려주기 위해서 오래 갈수 있는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를 추구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복지를 확대하더라도 우선 순위를 정하고 완급을 조절하며 ‘선택과 집중’을 통한 효율적인 복지 집행이 필요하다. 이즈음에 우리의 복지국가 여정을 동반해 줄 페이스 메이커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창진(차의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