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는 정부보다
재벌이 먼저 나섰어야
독일식 경영민주화 도입
분수 아는 나눔의 문화로
동아일보 11월 5일자에 실린 사진과 기사가 재미있다. 일견 연관된 내용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진은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두루마기 한복 차림에 부채를 들고 무대를 가득 채운 국악단 한 옆에 서서 도창(국악합창단의 노래와 장단을 유도하는 소리)하는 모습이다.
반면 기사는 ‘재계, 경제민주화 선제 대응?’의 제목 아래 SK그룹이 전문경영인제를 대폭 강화하고, 한진은 순환출자구조를 단순화하며, 신세계는 제빵업 지분매각을 하는 등 재벌 문제 해소에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전혀 다른 성질의 사진과 기사를 나란히 게재한 것에 불과함에도 무심히 넘어가지 못한 까닭은 내가 바로 직전날인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제8회 창신제(創新祭) 공연을 보았기 때문이다. 별 기대없이 참석했는데 듣다보니 빨려들어갔다. 빠른 템포와 스토리, 서울시 국악관현악단과 락음국악단이 소년소녀 및 어린이합창단과 빚어내는 화음은 절로 박수를 끌어내는 것 아닌가. 명창 안숙선 씨의 온몸 외침 소리에 젖어들다 71년 데뷔곡인 양희은의 ‘아침이슬’까지 듣고 나니 금방 국악마니아가 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백미는 따로 있었다. 한국 최초의 떼창인 100명의 크라운해태제과그룹 임직원이 부른 ‘사철가’가 그것이다. 윤 회장이 청포 차림으로 도창을 하고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자, 역시 청포 차림의 떼창꾼은 소북을 치며 영화 ‘서편제’의 감회를 되새기게 하는 ‘사철가’를 불러 젖혔다.
이 한국 최초의 떼창은 국창 조상현 씨가 심혈을 기울여 사사, 이미 한국 기네스북에 오르고 세계 기네스북에도 곧 등재될 전망이다.
여기서 몇 가지 느낌을 받았다, 이런 류의 떼창을 임직원이 함께 즐긴다면 사내 노사문제는 절로 해결될 것이다. 거기다 어딘가 찬밥 신세의 국악을 발전ㆍ보급시켜 국민 사랑을 받게 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런 편안한 기업 이미지는 당연히 매출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어찌보면 고도의 판매전략일 수도 있다. 나아가 나눔의 문화전도사로 사회에 각인될 때 경제민주화 소리가 나올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기업의 ‘아트밸리’ 사업도 비슷한 발상이다.
유산인 경기도 송추 일대 100만평의 땅에 누군가 골프장을 지으라고 권유했지만, 역발상식 돈 안되는 문화사업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 좋고 풍광 좋은 이 계곡이 개발연대에 유흥지로 전락, 곳곳에 모텔과 러브호텔ㆍ음식점 등이 늘어나 많은 이에게 혐오감을 주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트밸리 사업의 일환으로 조각공원과 공연장, 악기만들기, 유리병ㆍ장승ㆍ솟대만들기 체험장이 들어서면서 골짜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요지마다 자리잡았던 모텔 7개소를 매입ㆍ개조해 미술인과 문인의 작업터로 제공하고, 스튜디오 피카소와 준 등 전시장ㆍ공연장으로 활용하자 아연 분위기가 달라졌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그곳 주민 수백명을 이 골짜기로 초치해 장기간 묵게 한 것은 한일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100만평의 거대 산림을 지키기 위해 임직원에게 책임지역을 맡기고 결과에 따른 상벌제를 채택한 것 역시 등산ㆍ벌초ㆍ간벌 등 직원 건강에 도움을 주었지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대선후보마다 떠드는 경제민주화는 별 게 아니다. 대기업이 보다 사회와 소통하고 나눔의 문화를 발전시키면 절로 된다. 불공정 경쟁으로 국가의 부를 독식하고 인색할 때 불평불만이 커진다. 정치인보다 대기업가가 먼저 들고 나왔어야 할 명제였다.
전경련은 재벌 옹호기관 역할을 넘어 대기업이 나눔의 문화에 더 많이 참여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