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대의 엉터리 진료와 늑장 대응으로 건강한 병사가 사경을 헤매는 안타깝고 충격적인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런 일이 벌써 몇 번째인가. 허술한 군 의료체계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거세고, 군 당국이 개선안을 여러 차례 내놓았지만 일선 부대의 상황은 50, 60년대 수준 그대로다. 국력과 경제력, 군사력, 의료기술…, 무엇이 모자라 우리 젊은이들이 의료 사각지대에서 불안에 떨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군 의료 시스템의 대대적 수술이 시급하다.
경기도 포천의 한 부대에 근무하는 김유승 상병의 경우는 한심한 군 의료체계의 대표적 피해자다. 김 상병은 열이 심하게 오르는 등 감기몸살과 복통 증세를 느꼈지만 군의관은 해열제와 소화제 처방이 고작이었다. 며칠 동안 차도가 없어 내과 군의관이 다시 진료를 한 결과 쓰쓰가무시병 의심이 들어 상급 군병원을 거쳐 서울의 종합병원으로 긴급 이송했지만 때가 늦었다. 이미 패혈 쇼크로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감기와 증세가 비슷한 쓰쓰가무시는 초기 대응만 잘하면 그야말로 감기 정도로 지나갈 수 있는 병이라니 더 애석하고 안타깝다. <본지 11월 15일자 1ㆍ3면>
이 같은 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우선 경험 많은 노련한 군의관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군에는 2200명가량의 군의관이 복무하고 있다. 그러나 95%는 의무복무 3년을 채운 뒤 전역하는 단기 군의관이다. 그러다 보니 면허를 신규 취득했거나 전문의 과정을 갓 마치고 입대한 ‘초보 의사’들이 군 진료를 사실상 전담하는 구조로 돼 있다. 올해 초 국방부는 군의관들이 장병 진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진료여건 및 처우를 대폭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군의관 단기화’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의료 인력의 부족 말고도 개선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 꾀병이냐’는 식의 강압적 군문화도 병을 키우는 원인이다. 대대-연대-사단-군병원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이송체계도 신속하고 효과적인 진료를 저해하고 있다. 민간병원과의 협진 및 위탁진료 시스템도 극히 미진하다. 노후된 의료장비 개선도 한시가 급하다.
문제 투성이 군 의료 시스템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꽃다운 우리 젊은이들이 후진적 의료체계의 희생자가 된다면 자식을 군대에 보낼 부모는 아무도 없다. 병사들의 건강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며 강한 군대의 첫 조건이다. 아무리 성능이 우수한 최첨단 무기로 무장을 해도 군사들이 허약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