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훈 미래사업 본부장] 설원(雪原) 문화를 경험한 민족은 전세계 200여 국가 중 절반 정도 되는 것 같다. 따뜻하고 시원한 다른 계절에 비해, 겨울엔 눈이 온세상을 덮으니, 수송ㆍ교통수단이 달라지고 놀이문화 역시 변할 수 밖에 없다.
스키는 요즘 중산층 레포츠로 각광받고 있지만 기원전 3000년 무렵 처음 등장했을 때엔 눈꽃마을 이동수단으로서 생활필수품이었다. ‘Ski’의 어원은 본고장인 노르웨이 ‘Skilobor’라는 낱말에서 유래됐다. ‘눈 위에서 걷는 신발’이라는 뜻이다. 노르웨이 오슬로박물관에는 기원전 2500년대의 스키가 전시돼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몇 백년 앞서 러시아 바이칼호 일대에서 시작되었다는 흔적이 있다. 생활의 필요에 의해 스키를 만든 북구 원조급 나라에선 크로스컨트리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눈이 와도 싸움을 했으니 전쟁 목적으로도 활용되었다. 스키 타고 사격하는 바이애슬론이라는 올림픽종목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스키부대가 있다.
▶ 지난 16일 하이원리조트, 17일 웰리힐리파크 스키장이 차례로 개장했다. 엘리시안강촌, 한솔오크밸리, 대명비발디파크, 오투리조트, 알펜시아리조트 스키장은 이번 주말 문을 연다. ㈜헤럴드 사진DB |
어릴적 강원도에선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 납작하게 깎은 나무판자위에 헌 구두를 붙인 ‘나무 스키’, 굵은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 매끄럽게 다듬은 뒤 화롯불로 휘게해서 만든 손잡이-발판 일체형 ‘죽(竹)스키’를 탔다. 스키의 생명은 신발이라는 어원을 가진 만큼 양 발의 균형감이다.
며칠 영하의 아침기온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드디어 스키장이 문을 열었다. 하이원리조트와 웰리힐리파크가 지난 주말 개장했다. 영동고속도로 옆 불 밝힌 슬로프는 겨울의 전령이다.
듣자하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열풍이던 스노보드가 크게 줄었단다. 한때 스키는 아나로그,구닥다리, 보드는 디지털 신세대로 갈라놓는 문화가 있었다. 보드 인구가 줄어든 이유는 사고위험성이 스키 보다 30% 높고, 활강로를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여자보드가 선수부족으로 폐지됐다. 올들어 스노보드는 반값에 나왔다. 이런 경향은 10~20년전 유럽에서 먼저 나타났다.
눈 위에서의 생존을 위해 스키라는 문명의 이기를 발명한 인간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안전을 위해 보드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신체 균형감을 담보하는 스키가 생활에도 놀이에도 더 적합했다는 판단인 듯 하다. 이처럼 균형감은 참으로 중요한 문화의 기반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