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21일 밤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를 위한 TV토론을 가졌지만 기대엔 못 미쳤다. 상호 검증을 위한 맞짱토론의 장이 엉뚱하게도 단일화 필요성을 재확인하는 자리로 둔갑하고 말았다. 때문에 정책 이슈에 대한 토론다운 토론, 심도 있는 공방은 시종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수확이라면 두 후보가 직접 후보단일화에 대한 정치적 절충을 다시 하기로 했다는 점이나 그 결과 역시 불투명하다.
일의 순서가 뒤바뀐 것이 문제였다. 토론에 앞서 어떻게든 후보단일화 룰을 만들었어야 했다. 후보 단일화 가능성 여부조차 희미한 상황에서 토론다운 토론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렇다고 토론의 여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경제, 안보 등 적지 않은 부분에서 정책적 차이점은 확연했다. 과연 단일화가 돼도 무방한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품을 만도 했다. 그럼에도 상호 자극은 극도로 자제했다. 단일화로 인한 지지층 이탈을 최대한 막고, 특히 단일화를 깨지 않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까지 토론을 지켜본 이들에게는 큰 결례였다.
특히 두 사람은 후보단일화 조건을 놓고 티격태격했다. 더구나 합의 발표한 ‘새정치선언문’ 내용을 놓고도 둘 사이의 해석은 판이했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새 정치와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 뜻만 보고 가겠다”는 말과는 달리 단일화 욕심만 대놓고 내보였다. 과연 단일화 논의가 제대로 이뤄져 성사가 되기나 할는지 원초적인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사실 두 후보 측의 협상행태를 보면 오로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이었다. 감정의 골도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TV토론에 앞서 문 측이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했고, 안 측은 “천박한 이유”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이런 점을 두 사람 역시 숨기지 않았다. 문 후보는 안 후보 협상 팀에 재량권이 없다며 처음 주장을 끝까지 되풀이한다고 윽박지르다시피 했고, 안 후보는 오히려 문 후보 측이 말과 행동이 다르다며 맞받아쳤다. 이미 ‘아름다운 단일화’, ‘감동 있는 단일화’는 물 건너간 셈이다.
이제 무리한 단일화에 대해 고민할 때다. 다음에도 단일화가 필요하다면 결코 이런 식이어선 안 된다. 대통령제를 유지하겠다면 결선투표 도입이나 단일화 시기를 못 박는 등 법적ㆍ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대선이 코앞인데 대진표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면 이보다 더 후진적인 정치도 없다. 정치권은 개혁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