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하려거든 제대로 하라. 자기반성의 백서를 꾸미되, 새정치 콘텐츠를 담고 좌파 우파 장점을 추려내 중도지향의 합리적 세력을 집해 그토록 절실했던 정치조직을 꾸리라.
무소속 대선후보직을 돌연 사퇴한 안철수 씨의 ‘장외효과’가 만만치 않다. 29일 본지가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한 결과,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는 ‘정치쇄신’이었다. 떠난 안 씨의 정치적 브랜드가 ‘경제민주화’와 ‘성장’이란 거대 화두를 앞지른 것이다. 그의 그림자가 대선판에 짙게 깔렸다는 의미다.
30일 유력 여론조사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근소 차로 앞섰다. 사퇴파문 전 양자 차이는 더블스코어에 가까웠다. 안 씨 지지자 64%가 문 후보 쪽으로, 15%가 박 후보 쪽으로 간 결과다. 문 후보로선 이미 큰 빚을 진 셈이다. 더구나 중간지대 20%는 안 씨가 하기에 따라 또 다른 변수가 된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엊그제 일부 참모들과 점심만 하고는 “지지자들의 뜻을 따르겠다”는 메시지를 남긴 채 다시 표표히 사라졌다. 그다운 안개행보다. 백의종군을 할지 말지는 처음처럼 그의 몫이다. 선뜻 나서자니 구태정치의 종속변수가 되고, 빠지자니 정권교체 실패 원인 제공자가 될지 모르는 처지여서 고민은 클 것이다.
애초부터 ‘안철수식 정치’에 비판적이었던 나로선 이번 사태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갈수록 더 궁금해지는 역류성 욕구 같은 갈증이 생겼고, 그 와중에 안 캠프의 조용경 국민소통자문단장의 며칠 전 소회는 단비였다.
“안 후보가 큰 뜻이 있었다면 4월 총선에서 수도권 내 의미 있는 지역에서 출마해 정치세력을 만들었어야 했다. 중도사퇴 요인은 ‘국민후보’가 아닌 ‘야권후보’를 내세운 때문이다. 캠프도 단일화 캠프였지 대선 캠프가 아니었다. 국민을 얘기하면서 국민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기득권 장벽을 몰랐다면 처음부터 잘못 생각한 것이다.”
금과옥조가 따로 없다. 조 전 단장은 포스코엔지니어링 대표를 지낸 전문경영인으로, 박태준 포스코 전 명예회장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자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정치적 이력도 갖췄다. 안 후보의 동참 요청에 “기업세계와 정치판은 DNA가 다르다”는 말부터 꺼낸 이다.
결국 단일화는 실수고, 중도하차는 실패다. 분하고 억울할 것이다. 정치를 하기로 했으면 중심을 잡든지, 아니면 깨끗이 접든지 둘 중 하나가 답이다. 건넌 다리를 불사른 게 사실이면 결국 정치 아닌가. 하려면 피땀 나게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우선 자기반성의 백서를 꾸미되, 새 정치 콘텐츠를 담으라. 분명 시대정신에 맞다. 좌파 우파 장점을 추려내 중도지향의 합리적 세력을 결집해 그토록 절실했던 조직을 꾸리라. 죽도 밥도 아닌 것이 더 좋을지 모르는 게 우리 정치다. 기성세대를 아우르되, 보편타당성을 추구하라. 죽기로 각오할 때 비로소 정치를 얻게 된다.
물론 반대의 길도 있다. 번번이 상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로 무리한 단일화에 목매는 수준에 연연할 것이면, 흰 가운을 입든지 후학을 키우든지 사회에 이바지하는 게 훨씬 낫다. 일단 휴식이 필요할 것이다. 산을 벗어나야 제대로 산을 볼 수 있는 법이다. 현명한 처신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