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기업들의 비윤리적 행태가 여전하다.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핵심 기술을 빼앗는가 하면 담합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다 철퇴를 맞았다. 대기업이 위탁 생산한 고춧가루에서는 기준치를 넘는 농약성분이 검출됐다. 알 만한 기업이 아직도 이런 짓을 한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대기업들이 겉으로는 상생과 윤리경영을 다짐하면서 뒤로는 갖은 파렴치한 짓을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주자들이 경제민주화와 대기업 개혁을 한목소리로 외치는 것은 이런 기업들 때문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자 8위권의 무역대국이란 대외 평판이 무색할 판이다.
롯데그룹 계열의 롯데피에스넷은 갑(甲)의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중소기업을 위기로 몰아넣은 대표적 사례다. 금융회사에 ATM을 설치ㆍ관리해주는 이 회사는 납품협력업체의 관련 핵심 기술을 불법 복제해 사용하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롯데피에스넷은 처음엔 기술을 넘기라고 협력업체를 윽박지르다 거부하자 급기야 기술을 몰래 훔쳐낸 뒤 그것도 모자라 아예 협력업체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핵심 기술을 빼앗긴 해당 협력업체는 이로 인해 경찰 추산 75억원 상당의 손해를 보았다. 이런 정도의 타격이라면 웬만한 중소기업은 살아남기 어렵다.
밀가루 가격을 담합한 CJ제일제당과 삼양사는 대량 소비처인 제빵업체에 15억원을 물어주라는 엊그제 대법원 판결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 두 회사는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 윤리는 내팽개친 채 소비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이다. 이 때문에 특히 중소 제빵회사는 물론 동네 빵집과 분식집 등 대량 수요처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 두 회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식품기업이다. 더욱이 CJ제일제당은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농약 고춧가루’ 지적을 받았다.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적어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선 안 된다. 이번 판결은 고질적 대기업 간 담합행위에 경종을 울리는 뼈아픈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의 기술을 빼돌리고, 담합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다. 이런 기업들이 반(反)기업 정서를 불러들이는 원흉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투명 경영과 혁신, 사회적 책임 등을 최고의 기업가치로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윤리경영이 필수다. 이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구태를 답습하는 것은 결국 퇴출을 자초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