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AP 등 주요 외신들은 20일 새벽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당선 소식을 전하면서 ‘독재자의 딸’이 한국의 첫여성 대통령이 됐다고 긴급 타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암살로 막을 내린 아버지의 독재정권 이후 30년 만에 박 당선인이 세계에서 성별 격차가 가장 확고한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을 이끌게 됐다고 보도했다. 지지통신은 ‘비극의 딸’인 박 당선인이 부친이 이루지 못한 ‘국민 대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야흐로 18대 대선이 끝났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패배를 시인하고 박 당선인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아름다운 승복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번 박 당선인의 승리는 절반의 승리다. 반대편에 선 절반에 가까운 국민은 박 후보를 찍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이번 18대 대선처럼 갈라진 적은 없었다. 특히 보수·진보간 이념갈등에 2030과 5060의 부모·자식간 세대갈등까지 더해져 우리사회의 분열상이 여과없이 드러났다. 당선인이 말한 100% 국민 대통합이 선결과제인 이유다.
그렇다면 대통합은 어떻게 가능할까. 우선 약자에게 인내를 강요할 게 아니라 강자에게 양보를 요구해야 진정한 통합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면서 이른바 ‘줄푸세’를 외친다. 강자의 세금을 줄여주고, 규제를 풀어주며, 사회적 약자들의 항거는 법질서라는 이름으로 제약한다는 것인데 이래서는 대통합이 이뤄질 수 없다. 국민 대통합은 어느 한 특정집단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모든 국민이 뭉치는 ‘동원’이 아니다.
그간 박 당선인은 ‘수평형 리더십’ ‘소통형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보수 내에서도 박 당선인에게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위적 리더십’이 연상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않다. 박 당선인을 가까이서 경험해 본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걱정스런 대목이 더러 있다. 지난 2004년 한나라당 원내대표로서 박근혜 당대표와 함께 일했던 김덕룡 민화협 의장은 한 인터뷰에서 “당시 박 대표에게 ‘정수장학회 문제는 절대적으로 풀고 넘어가야 한다’고 진심으로 조언했는데 대표의 얼굴이 굳어지는 모습을 봤다. 그후 내 의견을 거부한 것은 물론 아예 나를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 당선인의 불통 리더십의 일면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다. 귀에 거슬리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 합리적 판단이나 소통의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 박 당선인 주변의 이른바 참모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당선인이 주요 현안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누구와 상의하는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오직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서 결정한다. 이 시대정신은 개발독재시대에나 통할 고뇌에 찬 독단의 결단이 아닌 소통의 리더십을 요구한다.
박 당선인이 물려받은 한국은 2%대로 주저앉은 낮은 성장률, 소득격차 심화, 일자리 감소, 반재벌 정서 등 어느 것 하나 만만치않은 난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총체적 난국을 헤쳐나가려면 약자들의 일방적 양보에 기댄 통합이 아니라 자신의 지지층보다는 상대 진영을 바라보고 국정을 운영하는 정도까지 통합에 나서야 한다. 반대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끌어안는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도 긴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들은 재앙의 5년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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