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 일선의 현직 경찰관이 금고털이를 일삼았다는 사실에 그저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순찰을 돌며 범행 장소 내부를 촬영해 공범에게 제공했고, CCTV를 먹통으로 만든 뒤 벽을 뚫고 금고를 구멍 내고 발자국을 물로 지우는 치밀한 각본까지 그 경찰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전남 여수경찰서 삼일파출소 김모 경사와 공범 박모 씨의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여수 시내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개요다.
더 기가 막힌 것은 15년 전부터 정보원으로 활용해온 범인과 친구로 지내며 7년 전에도 동일 지역 은행 현금지급기를 유사한 수법으로 같이 털었다는 사실이다. 앞서 구속된 범인의 시인에도 부인으로 일관하던 김모 경사는 두 범행 공모를 자백했다고 한다. 과거 은행 현금지급기 사건 수사에 문제의 경찰이 깊이 관여했고, 결국 미제 처리된 것도 놀라운 대목이다.
차마 언급하기 두려운 것은 그해 문제의 은행 현금지급기가 털리기 두 달 전 한 병원 금고가, 그 이듬해엔 축협 현금지급기가 잇달아 절도를 당한 사실까지 드러났고, 이 사건들도 이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경찰청은 지휘책임을 물어 김재병 여수서장을 대기발령하는 등 후속조치를 기민하게 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잠잠해지길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사안이 여간 심각하지 않다.
도둑 잡으라고 했더니 대도 행각을 일삼아 온 경찰관을 두고 치안 운운하는 것도 우스운 꼴이다. 경찰서 내 강력반 복도에서 수갑 찬 성폭행 피의자를 놓쳐 닷새 동안 인천과 경기 서남지역 일대를 불안에 떨게 한 것만으로도 울화통 치밀 일이 아니었나. 수사권을 놓고 국민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허구한 날 검찰과 갈등을 빚은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최근 들어 경찰 스스로 위신과 체면을 내동댕이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물론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한 대다수 경찰관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 도박 사이트, 사채, 위조달러, 마약 등도 모자라 살인까지 전ㆍ현직 경찰관이 연루된 강력범죄가 줄을 이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은 가장 큰 사회 불안 요인으로 강력범죄를 꼽았다고 한다. 그다음이 안보위기와 경제불안이었다. 연말 민생치안이 걱정인데 경찰까지 믿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면 필히 일벌백계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엄동설한으로 더 살기 팍팍하다. 아무리 좋은 대선 공약도 국민들의 몸과 맘이 우선 안전하고 편한 다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