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를 시작으로 인사를 마치 대선 전리품인 양 여긴 것부터 잘못이었다. 힘줄 좋고 끗발이 있다 보니 민원이 득실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시골장터에서 청와대까지 줄대기, 줄서기, 줄세우기가 횡행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인수위원회 출범이 초읽기에 들었다. 앞으로 50여일 동안 새 정부의 밑그림을 책임지고 그려내게 된다. 국정 전반을 살펴 지속가능한 정책을 선별하고, 쏟아낸 공약을 재점검해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주된 임무다. 물론 정부조직 개편도 핵심 사안이다.
인수위는 당선인의 인사 첫 단추다. 비록 한시적이긴 하나 그 책무는 막중하다. 과거 인수위에서 해가 뜨고 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정권 교체 때는 더했다. 인수위에 들기만 하면 출셋길이 활짝 열리고, 완장 하나 제대로 찼다며 온갖 부러움의 대상이 됐음은 물론이다.
멀리도 아닌 노무현ㆍ이명박 정부 출범 때를 보자. 노 전 대통령은 “인사 청탁을 하면 패가망신하도록 하겠다”고 했고, 이 대통령은 “인수위에 오는 게 향후 공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결국 한 뼘 거리 주변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따가운 질타와 멸시를 받았고 또다시 그럴 처지에 놓였다.
인수위를 시작으로 첫 조각은 물론 크고 작은 인사를 마치 대선 전리품인 양 여긴 것부터 잘못이었다. 힘줄 좋고 끗발이 있다 보니 민원이 득실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시골장터에서 청와대까지 줄대기, 줄서기, 줄세우기가 횡행했다. 정부조직 개편 때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필사의 노력은 차라리 눈물겨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인수위 멤버는 곧 정부 요직이라는 관행적 등식을 깨겠다는 박 당선인의 결기가 대단하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도 3일 한 수 거들었다. 논공행상이 필요하면 정부 인사가 아닌 당내 배려로 소화하겠다고 했다. 놀라운 반전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이번 대선은 보수 대 진보,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살기’식 대혈투였다. 돈봉투 대신 출세라는 사탕, 임명장과 명함이 살포됐다. 트럭을 동원해 전역에 뿌려대니 외곽 조직이 100만명이 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완장을 주기로 한다면 몇 톤 분량도 모자랄 판이다.
비단 인수위뿐만이 아니다. 경험칙상 측근이 더 큰 사고를 쳤다. 등잔 밑은 늘 어둡다. 아예 지금부터 ‘실세’라는 말부터 금하는 것이 옳다. 전문가 전성시대랍시고 새털처럼 가벼운 이들이 마구 날뛰는 것도 악이다. 이미 낙점을 받은 이도 찜찜하면 당장 고사하는 게 국사에 큰 도움이 된다.
첫 조각은 진중하고 냉철한 중립자 몇을 곁에 두고 신중하게 할 일이다. 인수위는 당선인이 취임 때까지 매듭의 현장을 찾아 그것을 풀도록 해보라. 그러다 보면 귀한 인재까지 눈에 들게 된다. 우리 사회엔 갈등 속에 갇혀 있는 답이 너무 많다.
더 이상 완장은 없다는 걸 제대로 보여줄 때다. 물론 많은 이들이 상실과 허탈을 맛볼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시대정신인 것을. 욕심을 접고 차라리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맘 편할지 모른다. 특권을 내려놓고, 탐오와 담을 쌓고 낮은 자세로 임해 보라. 감동이 있고 테마가 있는, 짠한 삶을 살아가다 보면 러브콜이 오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