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하고 있는데 너때문에…
각자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
남의 잘못 부풀리고 핑계만
‘역지사지’ 넓은 마음 가져야
연일 지속되는 한파에 세상이 꽁꽁, 그래도 따스한 봄날이 엄동설한을 밀어내줄 거라는 희망을 꿈꾸는 정월 초다. 늘 그랬듯이, 올해도 세계 각국은 여러 가지 문제로 시끄럽고 가속화되는 지구 온난화의 두려움 속에서도 치열한 경제전쟁은 지속될 것이다. 주변국들의 애국적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정치판이나 공무원들이 비난받을 일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강자 때문에 약자는 먹고살기 팍팍해지고 노사 간에, 업종이나 계층 간에, 남북 간에도 상대의 탓으로 돌려야 할 무수한 핑계와 변명거리들이 올 한 해를 수놓을 것이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너’ 때문에 어려워지는 세상, 검은 뱀 계사년이 돌아왔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더라.
말 많고 편 가르기 극심했던 선거는 끝났다. 새해 들어 정치ㆍ사회ㆍ문화ㆍ경제ㆍ국방 가릴 것 없이 새 판 짜기에 여념이 없다. 오는 2월 25일, 새 정부가 들어서기 무섭게 국민은 그 많은 공약의 이행을 재촉할 것이다. 국민통합하고 경제부터 살려라, 반값 등록금에, 청년 일자리에, 복지에, 국방에, 문화에, 사회 안전망까지 두서없는 요구들이 밀려들 것이다. 내 것부터 빨리 챙겨 달라고. 한편으로는 국회나 시민단체들로부터 실책에 대한 비판과 발목잡기가 성행하는 사이에 차기 도전자를 진즉 띄워보려는 언론들의 소설구상까지 엇박자를 부추길지 모른다.
살다 보면 잘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안 되는 일엔 대개 이유가 있다. 인허가가 늦어지면 공무원 탓, 손님이 줄면 날씨 탓, 이익이 줄면 비용 탓, 하다 하다 안 되면 조상 탓까지, 혼자만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많은 세상이다. ‘당신의 불행은 나의 행복’, 핑계를 이기고 성공의 요행을 상상하는 말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실패나 좌절이 전적으로 남의 탓 때문일까? ‘나’는 모두 잘하고 있나? 새해 벽두부터 욕먹을 줄 알지만, 짚어보자. 등록금 비싸다는 대학생들, 돈이 아까운 만큼 공부하고 있나? 박봉에 혹사만 당한다는 샐러리맨들, 모두 월급만큼이라도 일하고 있나? 가난한 문화예술인들, 정말 창조적 열정이 불타고 있나? 활동가들, 정말 편견사심 없이 시민사회를 이끌고 있나? 경제 문제 날 선 비판 자랑하는 언론들, 자기 경영은 잘하고 있나? 내 탓보다 남 탓이 부풀려지는 요즘, 나 자신도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대다수 국민은 분명 잘하거나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늘진 곳에서 불평등ㆍ불공정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대신해서 싸워온 분들을 화나게 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 화는 내지 마시라. 하지만 부모의 잔소리, 교사의 훈계, 선배의 충고, 부하의 충언, 친구의 고언, 동료의 조언 등을 가슴 찔리게 들어본 적이 있다면 ‘나는 잘하고 있나?’, 한 번쯤 양심적으로 짚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뜻 모를 언어로 비난만 앞세우는 익명의 댓글들, 편식으로 무장한 지식인들 정말 ‘나’는 잘하고 있나?
‘나’는 정말 살아있나?
남의 사소한 실수에도 화를 내거나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화내는 사람들, 자신에겐 참 관대하다. 화내는 이유는 핑계, 실패 이유는 변명으로 마무리된다. 언제나 ‘나’는 옳다. 그럼 ‘너’는 언제나 틀리는가? “주여, 왜 이리 저를 힘들게 하시나이까?” 하나님에게까지 따지는 이들, “왜 나를 나셨나요?” 부모에게 따지는 자녀도 있다. 입사시험 볼 때는 야근불사 선공후사 충성맹세 하고서는 “혹사시키지 마라”, 음식점에서 설렁탕에 머리카락 하나 들었다고 “주인 나와라~!” 고래고래 소리쳐본 적이 있다면, 자신의 자녀가 그곳에서 ‘알바’를 한대도 그럴 수 있을까? 세상은 역지사지다. 세 사람이 걸어가면 한 명쯤은 스승감이 있다고 했다. ‘나’는 괜찮은가, 정말 살아있나?
아직 정초다. 경제가 어렵고 세상이 뒤숭숭할수록 서로 의지해야 옳다. 핑계나 변명으로 남에게 화낼 일이 있다면 ‘나’ 자신에게도 돌 하나쯤 던져보자. 자신에게 던지는 돌에 맞아 다치지는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