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최고의 선은 행복’이라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궁극적인 질문은 ‘행복’이라는데 이의 없을 것이다. 그 행복한 세상에 대한 기대가 사뭇 부풀어 있지만 경제여건은 여전히 녹록치 않아 보인다. 다수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내외로 보고 있지만 IMF는 지난해 수준인 2.7%로 내려잡고 있다. 북유럽과 남미, 동아시아의 재정위기가 또다시 불거질 것이라는 전망은 무역의존도 100%를 넘나드는 우리에겐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주변의 북한체제는 불안하고, 중국과 일본의 팽창정책은 확대일로에 있다. 행복시대의 관문을 생각해 본다.
먼저 국민 스스로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하루에도 오만가지를 생각하는 복잡한 존재이다. 월세방에 사는 사람은 전세로, 세입자는 내 집 마련이 가장 큰 행복이다. 병상의 환자에겐 건강, 말기암 환자에게는 내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행복이다.
지난달 19일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세계 14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지수를 발표했다. 1위는 GDP 1만달러가 안되는 파나마와 파라과이 국민이었지만 우리나라는 그리스, 몽골, 카자흐스탄 등과 함께 97위로 나타났다. 돈도 학력도 명예도 아닌 낙천적 국민성과 높은 종교심이 원인이라는 분석이지만 부러울 따름이다. 2002년 행복지수를 처음 창안한 영국 심리학자 로스웰 교수는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가족과 시간보내기, 취미생활, 새로운 일 추구 등 8가지를 제시했는데 그 중에서 ‘달성 가능한 목표세우기’와 ‘현재에 집중하기’가 눈에 띈다. 행복을 스스로 정의하고, 향유할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파이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나눠주는 시스템을 더 잘 만들어야 한다. 지난 50년간 경제팽창이 있을 때마다 일자리는 증가해왔지만 증가율은 감소해왔고 2000년대 10년간은 해마다 0.9%씩 감소해 왔다. 노동생산성 향상은 부의 쏠림현상으로 이어졌고 1대99의 저항으로 표출됐다. 양극화의 대안으로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됐고, NGO(비정부기구)와 협동조합 조직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한편 몇 년간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2만달러를 유지하면서 우리를 선진국이라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단연 1위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지수 역시 최하위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경쟁 대상자로만 인식되는 구도하에서 승자는 행복한 사람이고 패자는 실패한 인생이다.
GDP를 제안한 미 쿠즈네츠 교수도 이는 삶의 질에 대한 지표가 되지 못함을 환기시켰다. 세계은행은 인간개발지수를 활용하고, EU와 OECD, 프랑스 영국도 별도의 후생지표를 개발 활용하고 있듯이 우리만의 행복지수도 필요하다고 본다. ‘죽겠다’로 하루를 시작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일주일의 행복은 ‘복권’이고 한달의 행복은 ‘월급날’이라 한다. 경영학자 매슬로우는 ‘욕구 5단계설’에서 인간은 기본적인 경제욕구가 충족되면 ‘함께사는 사회’로의 소속을 원하는 존재라 한다. 나만의 목표로 인해 행복해하고 이웃 때문에 더욱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