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탕평 인사를 하고 균형발전에 돈을 쏟아 부어도 ‘호남 90%, PK 80%’ 같은 집단 투표 상황에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박 지사의‘ 충동적 호남 표심’ 발언은 그 갈등의 골에서 이젠 벗어나자는 외마디 외침이다.
박준영 전라남도 지사의 ‘충동적 호남 표심’ 발언으로 호남 전역이 벌집을 쑤신 듯 발칵 뒤집어졌다. 소중한 자신의 권리를 가볍고 충동적인 행위로 ‘폄하’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민주당 소속 도지사가 한 말이라 그 배신감에 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당장 현지 민주당 지부는 ‘호남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며 분노의 논평을 냈고, ‘망언’이란 극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절절 끓는 분위가 멀리서도 확 느껴질 정도다. 일반 개인과 시민단체들도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며 박 지사를 맹공했다. 비등한 비난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기세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로 상실감에 빠진 호남인들의 속마음을 모를 리 없는 박 지사가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일각의 지적처럼 ‘호남 총리’ 하마평에 오르자 박근혜 당선인에게 보내는 모종의 신호였을까. 절대 그렇지는 않다. 되레 이번 파동으로 ‘박준영 총리설’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그가 발언의 대가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3선 도지사이자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그의 정치적 생명마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이 역시 박 지사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한 각오 없이 이런 말을 했을 리 만무하다. 실제 마음만 먹으면 그는 정치인의 길을 쉽게 갈 수 있었다. 세 번의 민선지사 경륜으로 지역 내에서 국회의원 한 자리쯤은 얼마든지 할 수도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이제 어렵게 됐다.
그는 매사에 합리적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정치인이지만 당리당략보다는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 찬성’이 대표적 예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반대할 때 ‘영산강을 살려야 한다’며 유일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적 이유로 영산강이 썩어 지역발전을 가로막게 놔두는 것은 도지사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발언도 이런 맥락이었다고 본다. 그는 발언 파동 이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선 패배에 따른 호남의 고립화를 치유하는 처방을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표현처럼 호남인 스스로 실패한 정치세력(친노)에게 90%의 몰표를 주는 투표행태로는 결코 망국적 지역주의 단단한 껍질을 깰 수 없다. 그러기에 호남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의 골이 깊다지만 지역 간 갈등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다. 많은 이들이 ‘통합’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하지만 아무리 탕평 인사를 하고 지역 간 균형 발전에 돈을 쏟아 부어도 90%의 몰표가 나오는 정치환경에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물론 몰표 현상은 호남뿐이 아니다. 대구 경북에서는 80%가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 이 역시 정상이 아니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대구ㆍ경북에선 민주당 국회의원이 나와야 대한민국이 건전하고 고르게 발전할 수 있다. 편식은 몸에 독이 될 뿐이다. 박 지사는 개인적으로 가혹한 대가를 치르겠지만 그의 용기는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중한 밀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