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 청문회가 열린다면, 새누리당은 이 후보자의 검증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자존심, 국민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게 보수정당이 할 일이다.
권위가 무너진 사회는 무질서다. 강제력을 동원한 공권력이 권위를 대체하는 악순환의 사회,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다. 국가적으로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널리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 우리는 그들은 5부요인, 또는 4부요인이라고 한다. 대통령(행정)ㆍ국회의장(입법)ㆍ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사법)이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4부요인이다. 이 중 국가의 최고 수장인 대통령에게 권위를 기대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수시로 말을 바꿔 신뢰를 상실했고, 상대 진영의 가슴에 복수심을 자극할 만큼, 막말도 해왔다. 최루탄이 터지는 가운데 의사봉을 두드리는 국회의장의 권위는 도매금이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부적절한 과거 행태에 대한 논란이 낯 뜨겁다. 1988년 설립 이후 최고의 실정법 규범인 헌법에 관한 분쟁, 의의(疑義)를 사법적 절차로 해결해온 헌법재판소는 이 후보자의 도덕성 논란 그 자체로 권위추락의 위기에 처해 있다. 오랜 전통으로 만들어진 권위도 추락은 한순간이다.
이 후보자의 성향을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그가 내정됐을 때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당선인과 같은 TK(대구ㆍ경북) 출신, 헌재 25년 역사상 합헌 의견을 가장 많이 낸 ‘체제 순응적 재판관’, 친일재산 환수법 위헌 의견 등 소수보다 다수의 편에 선 보수편향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보수편향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정체불명의 인사”라는 야당의 반발도 있었다. 성향이야 보수와 진보, 세대별로 차이가 날 수 있다. 판결에서 헌재소장의 몫은 9명의 재판관 중 1명이다. 경제민주화, 복지 등에서 상당부분 좌클릭한 박 당선인이 이 후보자의 지명에 동의했다고 해도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공직생활과 관련해 현재까지 제기된 의혹은 결코 가볍지 않다. ‘능력우선’이라는 명분으로 도덕성에 한참 소홀했던 이명박 정부의 인사 중에서도 최악으로 꼽을 만하다. 위장전입과 부인까지 동행한 잦은 해외 출장, 기업체 협찬 요구, 불법 정치자금 후원, 저작권법 위반 등 세기도 어렵다. 미심쩍은 예금 증가와 자녀의 증여세 탈루 의혹 등 재산문제가 연일 야당발로 터지고 있다.
이 후보자 측은 사실 무근, 또는 오해라고 해명했지만 사법부 내부에서조차 부적절한 처신과 관련한 증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또 독선적 스타일 때문에 소장이 되면 헌재 평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후보자에 대한 적격성 논란은 ‘51대 49’의 문제로 폄훼될 수 없다.
위장전입은 당시에는 관행, 탈세는 청문회 이후에 꼭 납부, 이렇게 높은 공직에 오를지 몰랐다 등등 후보자의 굴욕을 보는데 익숙하다. 유야무야 청문회 끝내고 입 싹 닦고 장ㆍ차관하는 뻔뻔함에도 익숙하다. 하지만 사법부의 최고수장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이 후보자의 인격이 불신받으면 헌법재판에 대한 국민 신뢰는 기대할 수 없다. ‘딸깍발이’로 한평생 법관으로 살았다면 이 후보자의 선택은 보인다.
만약 오는 21일 청문회가 열린다면, 새누리당은 이 후보자의 검증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자존심, 국민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게 보수정당이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