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작가’ 이호철 씨는 자신의 문학관을 스스로 지은 소설가다. 제 손으로 제 문학관을 짓는 게 이상스러울 수도 있다. 이 씨는 본래 쓰던 고양시 작업실을 문학관으로 개조하면서 연 2회 독회활동을 하며 살아있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씨는 “이효석문학관도 메밀꽃 팔아먹는 데만 쓰고 있다”며, “이효석이 살아있다면 ‘이게 뭐냐’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관은 작가 사후에 그의 작품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짓는 게 일반적이다. 작품이 탄생한 무대, 작가가 태어나 자라고 활동한 곳, 특별한 연고가 있는 지역에 세워 독자들이 작품을 추체험하는 즐거움을 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최근의 문학관은 좀 수상쩍다. 작가와 지자체가 손잡고 말뚝박기 인상마저 준다. 안성에 거주하는 고은 시인을 수원시가 문학관을 지어주겠다며 이주시키는 꼴이나 돈 벌어주는 이외수문학관에 매달리는 화천군은 지나치다. 작가의 문학관을 짓는 일보다 더 시급한 건 한국근대문학관이다. 현대문학의 뿌리를 보존하는 일은 다들 나몰라라다. 이에 한국작가회의가 올해 서울시에 근대문학관 건립을 제안할 참이다. 그런데 모양이 군색하다. 서울시 예산을 쓰는 입장이다 보니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가 대상일 수밖에 없어 꼼수를 낸 게 서울에서 활동한 작가를 포함시켰다. 도쿄에는 에도시대 가장 큰 번주였던 마에다 장군의 집을 활용한 일본근대문학관이 있다. 전시와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저택은 일본 무사 귀족의 전통가옥에 들어가 구경할 수 있게 해 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우리로선 부러울 뿐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