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식과 뒷 수발을 해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요양원에 입소한 상호아저씨를 찾아나서 환하게 웃고있다.(독자 제공)
[헤럴드 대구경북=김성권 기자]정신지체 장애자로 경북 울릉도에서 태어나 80 평생을 섬에서 보낸 이상호 할아버지는 울릉도의 명물이다. 매일같이 리어카를 끌고 울릉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청소를 하기도 하고 부족한 일손을 도와 왔다.
설 명절이면 이집 저집 다니면서 떡국을 얻어먹으며 행복해 하던 이상호(81)씨를 올 설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해맑은 웃음과 때 묻지 않는 심성으로 살아온 그가 요즘 울릉도 관문 도동항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여든 한 살의 노총각 상호 아저씨, 그는 여객선이 오는 날이면 지개와 리어카 로 인근 가게에 박스를 배달하는 일도 그만 뒀다.
울릉도 도동항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 아주머니가 상호아저씨에게 점심을 제공한후 즐겁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헤럴드 자료사진)
7년 전 의치보철(틀니)을 한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상호아저씨는 "이젠 장가 갈수 있어요. 이빨도 예쁘게 했으니 참한 색시만 있으면 된다" 며 자신의 얼굴이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보며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2억 원이 있어야 집을 사고 장가를 갈 수 있다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색시가 생기면 절대 고생 안 시키고 한복도 사 입히고 꽃신도 많이 사주겠다고 다짐한 노총각 상호 아저씨는 과연 장가라도 갔을까?
그는 쇠약해진 몸으로 거동이 불편하게 되자 동네 이웃 사람들의 주선과 권유로 최근 울릉도 군청소재지에서 멀리 떨어진 서면의 K 요양원에 입소해 생활하고 있다. 평소 매일 끼니를 챙겨주며 뒷수발을 맡아온 여관과 식당 주인들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가 온 몸으로 부대껴 온 인생살이를 통해 참된 삶과 진정한 행복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준 장본인이 기 때문이다.
울릉도 도동항에서 상호 아저씨가 보이지 않으면 항구 사람들은 불안하거나 허전해 했다.
그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도동 해변공원에 출근해 열심히 휴지를 줍는다. 시키는 사람도, 보수도 없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음악이 흐르면 가만히 있질 못하는 흥은 오징어 손질하는 부둣가 아주머니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며 누구보다 신나고 부지런하게 살아왔다.
의치보철(틀니)을 끼운후 즐거워 하는 상호 아저씨(헤럴드 자료 사진)
특히 맨발에 한쪽 신발은 늘 구겨 신는 아저씨가 1년에 한 번 양말을 신고 새 운동화를 갖춰 신는 날은 울릉 군민체육대회뿐이다. 군민체육대회가 열리면 상호 아저씨는 동네에서 제공한 체육복을 입고 혼자서 운동장 한바퀴를 돌며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
상호아저씨가 운동장을 돌면 모든 경기를 중단하고 그에게 열띤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운동장을 거꾸로 돌며 우리에게 웃음을 주던 친숙했던 영원한 1등 선수 상호 아저씨를 이제는 운동장에서도 보지 못한다.
그는 지난 2009년 MBC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행복한 울릉인’으로 재탄생해 전국 극장가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당시 울릉도 세 가지 명물로 오징어, 호박엿 그리고 상호 아저씨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세월은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갈수록 거동이 불편하고 숨이 찬 모양이다.
요양원 관계자는 30일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상호아저씨는 현재 건강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음식도 잘 먹고 있으며 낙천적인 성격으로 입소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참 반갑고 기쁜 소식이다.
그를 오랫동안 지척에서 보살펴온 마을 이장 최동일(62)씨는 "세월 앞에 장사가 없듯이 많이도 여윈 체격이 안쓰럽지만 지금처럼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오래 오래 건강하기만을 바랄뿐이다.“고 말했다.
최 이장은 또 "상호 아저씨를 아끼며 돌봐준 동네 사람들이 매월 주기적으로 요양원을 방문해 상호 아저씨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며 말벗이 돼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ks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