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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부동산 대책을 기다리며

대한민국의 무주택자들에게는 잊지 못할 트라우마가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과감한 규제 완화로 이른바 ‘빚내서 집 사라’는 정부의 시그널을 흘려보내 아픈 기억이다. 이후 10년 가까이 이어진 주택 가격의 대세 상승에 이들은 졸지에 ‘벼락거지’가 됐다. 대출을 일으켜 집을 산 이들과 아닌 이들의 자산 격차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커졌다. 그래서 이 무주택자들은 정부의 주택정책이 보내는 신호에 극히 예민하다. 아니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 정책의 신호를 예의 주시한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이 신호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때가 아마 요즘일 듯싶다. 하락하던 집값이 반등하고 있는 시점에 추석 전 부동산 공급대책을 내놓겠다고 한 정부의 속내가 무엇일지 많은 이가 궁금해한다. 분명 미묘한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

집값 하락이 본격화한 시점에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시장의 연착륙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거래가 급감하고 집값 하락폭도 커지자 자칫 부동산시장 침체가 경제에 큰 부담을 줄까 걱정이 컸던 것 같다. 금리가 가파르게 뛰고 있었고, 미분양이 급증해 자칫 프로젝트파이낸싱의 붕괴로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까지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컸다. 전셋값 마저 빠져 역전세발 집값 하락 위기론까지 빠르게 번졌다.

이에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에 예외를 둔 특례보금자리론이 무려 40조원이나 책정됐고, 역전세에 처한 집주인에게도 DSR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대출을 해줬다. 이 유동성은 부동산시장 연착륙을 넘어 시장을 되돌리는 힘으로 작용했다. 9억 이하 집의 거래가 늘었고, 갭투자 물건의 정리가 필요했던 다주택자들도 굳이 전세금을 내주려 서둘러 집을 팔 이유가 사라졌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해석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의 PIR(가구소득 대비 주택 가격비율) 18이 과하게 높다고 지적했지만 이후 이뤄진 정부 정책은 집값을 올리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이어졌다. 사실상 정부 정책의 시그널이 ‘빚내서 집 사라 시즌 2’라는 해석이 광범위하게 번졌다.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부동산 불패론이 다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최근 빠르게 늘어난 가계부채는 이런 수요자들의 다급한 심리의 결과물에 다름아니다. 사적 경제활동의 결과물이었던 역전세 집주인에게까지 대출 규제의 예외를 둔 게 결정적이었다.

정부가 느닷없이 부동산 공급대책을 다급하게 내놓는 데에는 이런 시장의 조급한 심리를 핵심 변수로두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미 정부는 250만 공급계획을 소상하게 밝히지 않았던가.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게다가 공급마저 부족하니 앞으로 집값을 더 오를 것이라는 심리,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빚을 내 집을 사야겠다는 조급함이 시장 전반에 퍼질까 정부는 걱정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분명, 수요자들이 빚을 내 다급하게 집을 사는 것을 정부가 의도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의 가계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그동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정책신호가 모호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공급대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안한 수요자들의 심리를 가라앉힐 수 있어야 한다. 어설픈 대책은 꿈틀대는 시장에 불쏘시개가 될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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