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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억9천’이원웅PD “선상 도미노 세우기는 불가능한 미션…제작진 욕하면서 자기들끼리는 단단해져”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최근 종영한 tvN 예능 ‘2억9천: 결혼전쟁’(연출 이원웅/작가 강숙경)은 열 커플이 서로의 믿음과 사랑을 증명하고 결혼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가는 과정을 그린 리얼 커플 서바이벌이다. 최광원-신혜선 커플이 놀라운 역전승을 거두며 최종우승했다.

이 프로그램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의 리얼 커플 서바이벌을 시도하며 예측불가한 서사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는 평이다. 이원웅 감독을 만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우선 참가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방송하기 위해 2주를 빼야 하므로 직장 다니는 생활인은 힘들다. 일반인은 카메라 앞에서 어필을 잘못한다. 어느 면에서는 특이하거나, 예체능 계열도 많다. 리얼리티가 있지만 너무 평범해지면 방송으로 뽑아내기 힘들다. 관종이 출연자로서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겠다는 진정성은 담보돼 있어야 한다. 홍보만 노리고는 나올 수가 없다. 부모님이 반대해 못나온 커플도 있고, 좋지 않은 이력이 나와 못나온 사람도 있다.”

첫 질문부터 매우 솔직한 PD다. ‘강철부대’를 연출한 PD답게 비연예인 출연자들의 성격 파악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몇몇 커플의 성격에 대해서 말했다.

“역전커플인 우승팀(최광원-신혜선)은 매우 단단한 커플이지만, 최약체로 꼽혀온 ‘발레커플’인 준우승팀(김태석-백지윤)이 현실에 있는 대다수 커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청자분이 미워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에 대해 신경을 안써야 된다. 어쩌라구 정신이 필요하다.”

우승팀 최광원-신혜선 커플. 보기만 해도 금슬이 좋다는 게 느껴진다.

그는 이어 “우승팀은 너무 단단하고 완성돼 있는 팀이다. 어떤 식으로도 깰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우승팀은 남자 부모님이 보시면 어떡하지? 위태위태하고 백지윤씨가 싫다싫다 한다. 하지만 김태석 입장에서는 이게 러블리해보인다. 그럼에도 손을 잡고 완주하더라. 결혼도 맨날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것, 이게 현실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3위 이상민-오수현 커플은 게임을 너무 잘하는 강팀이어서 파이널에서 탈락했다. 결승대결 상대 지목권을 가진 ‘발레커플’ 김태석-백지윤이 이 팀을 피했기 때문이다.

“이상민-오수현 커플은 15년 만난 완성 커플이다. 5년이나 만나 서로 남매 같다. 10일간 찍으면서 한번도 안싸웠다.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게 되고, 제작진이 싸울 기회를 주는데도 이들은 15년동안 이미 다 경험했다. 그 산들을 다 넘어 안정적이다. 그래서 분량이 적었다.”

이원웅 감독은 역시 우승팀의 남자 최광원에게는 감상할만한 포인트가 많았다고 했다.

“최광원은 승부사 기질을 가지고 있다. 자기를 넘어섰다. 타이어 뒤집기는 더 이상 뒤집을 수 없을 때부터 이야기가 나온다. 최광원은 일반인을 넘어서는 그런 게 있다.”

최광원-신혜선은 서로 추앙하는 관계라고 했다. 서로 평가를 하지 않는다. 남녀가 만나도 하이어라키(계층, 위계)가 생긴다. 외모,수입, 집안 격차 등등. 이 커플은 그 차이를 초월했다. 이들은 찐사랑을 보여준다.

“미술감독인 신혜선의 경제적 능력이 좋다. 하지만 그것을 과시하지 않는다. 배우인 남자가 못나가도, 여자가 체중관리를 안해도 좋다. 처음에는 우리도 진의를 의심했다. 하지만 서로 있는 그대로를 봐준다. 최광원은 1회때 갯벌에서 격투기 커플을 붙잡아, 룰은 어긴 건 아니지만 욕을 많이 먹었다. 이 상황은 제작진이 의도한 그림을 넘어선 거다. 하지만 이들 커플의 게임에 임하는 자세와 좋은 모습으로 인해 팬덤이 점점 확장됐다.”

‘2억9천’은 단계마다 등장하는 각종 게임과 미션들을 보면,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개인의 힘만으로 게임을 이길 수 없다. 남녀 커플이 소통과 협력을 잘 하고 호흡이 잘 맞아야 미션을 통과할 수 있다.

“정정당당하게 싸우게 하고, 중간에 함정을 만들어주면 긴장감이 생긴다. 인생도 열심히만 한다고 우승 하는 게 아니다. 기운이 왔을때, 이를 타고 상대를 이겨야 한다. 제작진도 승부를 예측할 수 없지만 살아남는 커플은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미션들은 그냥 대충 만들어진 게 아니다. 제작진의 눈물겨운 노고와 치밀한 분석이 합쳐진 결과다.

“피디가 항상 공장에 가 있다. 계속 장비를 살피며 조금만 낮춰봤다가 올려보기도 한다. 장치가 있는 서바이벌 예능은 한국에서는 아직 마이너지만 미국에서는 인기가 좋다. 단점은 손이 많이 가며, 제작비도 많이 든다는 점이다.”

이 감독은 결승 게임부터 가장 먼저 짠다고 했다. 그후 10개 미션과 7개의 데스매치를 만든다. 이 게임들이 결승으로 향하게 한다.

“결승을 하고 나면 뭔가 하나 찍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자동차 오프로드 코스가 있는데, 여기를 걸어다닐 생각은 안하더라. 여기를 지도 없이, 헤매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혼 목적지는 없다. 끝까지 가야 한다. 지도는 없이, 옆사람과 항상 붙어서 간다. ‘언제 끝나지’ ‘이게 맞나’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배위에서 도미노를 세우는 것도 사실 불가능한 미션이다.도미노 폭을 조금만 두껍게 하면 세울 수 있다. 침을 묻히건, 바람을 막건, 어떻게 해도 안된다. 세울 수는 있어도 1분이 지나기 전에 다 넘어지도록 설계됐다. 괴롭히는 방식이다. 될 것 같은데 안된다. 남녀가 만나 50~70년 사는 것도 안될 것 같은데 된다.”

‘2억9천’은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포맷 관계자들로부터 문의가 온다고 했다. 제목도 정해놨다. ‘웨딩 파이터스’(Wedding Fighters).

이 감독은 “결혼 생활에 위기나 고난이 왔을 때 제주 가는 배 위에서 하던 도미노 게임을 한번쯤 떠올렸으면 좋겠다. 이런 것도 했는데, 뭔들 못할까. 웨딩드레스를 입고 갯벌을 뛰는 것도 말이 안된다. 참가자끼리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한다. 좋은 경험이 됐다면서”라고 말했다. 이어 “‘2억9천’이 제시하는 게임은 비현실적인 것이다. 제작진을 욕하면서 자기들끼리는 더 단단해진다. 외부에 적이 생겨야 더 결속하게 된다. 우리는 참가자에게 욕을 많이 먹으면 잘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원웅 PD는 서울대학교 사범대 교육학과를 나온 채널A 2기 PD로 10년간 연출 경험을 쌓았다. 처음에는 시사 교양 PD를 하다 시의성 있는 예능까지 연출하게 됐다.

“교양 PD 출신이다 보니 아이템 소재는 다큐에서 많이 찾는다. OTT와 유튜브가 생겨 TV가 잘 할 수있는 게 많이 줄어들었다. 우리만 가진 것은 시의성이다. 오티티는 제작기간이 길다. K-예능 작법으로서의 저널리즘적이고 다큐적인 아이템으로 세계 200개국에 팔려고 한다.”

이원웅 PD는 ‘‘오징어게임’의 룰이 단순해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명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세계 200개국을 설득하려면 단순해야 한다. 한국의 문화배경을 몰라도 이해할수 있어야 한다”면서 “결혼도 전세계적인 소재다. TV는 고급 콘텐츠가 아니고 1분이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을 체험한 분은 결혼에 대한 전체 함의들과 게임이 연결돼 있음을 알게된다. 충분히 힘들어야 한다. 고난을 주면 갈등이 나오거나 갈등 봉합이 된다. 느슨한 미션은 안된다. 출연자는 항상 긴장할 수 있게 미리 게임을 알려주지 않는다. 4m 높이의 가파른 장벽을 올라 여자 팀원이 깃발을 뽑아 승리를 확정하는 게임이 주어져야, 김해리가 승부욕이 강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원웅 PD는 “나라마다 예능 소비 패턴이 다르다. 지구인의 감정을 평준화시킨 지역이 남미다. 남미 사람들이 본다고 생각하고 만들면 위아래 공략이 가능하다”면서 “OTT가 생기는 등 콘텐츠의 글로벌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K-예능의 가능성도 높이 보고,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고 전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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