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SBS 금토드라마 ‘7인의 탈출’을 보려면 에너지를 잔뜩 비축해야 한다.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얘기다. 영혼이 피폐해진다는 사람도 있다.
김순옥 작가와 주동민 PD가 ‘펜트하우스’ 이후 2년여만에 다시 뭉쳤다. ‘펜트하우스’는 시청률이 30%를 기록했던 막장드라마의 기념비적인 시리즈물이다. 학교폭력, 가정폭력, 돈이라면 무엇이건 할 수 있다는 물신숭배와 허영속물 플렉스는 기본이다. ‘펜트하우스’의 경우 부동산 투기와 인간의 욕망과 허용을 적당히 버무려 막장을 극대화함으로써 세태 풍자라는 의미는 지니고 있었다.
OTT 플랫폼으로 수위와 자극성을 빼앗긴 지상파에서 김순옥 작가가 어떻게 대응해 나가는지를 볼 수 있는 작품이 ‘7인의 탈출’이다. 여기서도 초반부터 여고생이 교복을 입고 학교미술실에서 출산을 하는 센 장면을 내보내 “막장이 아니라 변태, 퇴폐의 드라마”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연예인 지망생 한모네(이유비)는 자신의 출산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같은 반 친구 방다미(정라엘)가 양부(養父)인 이휘소(민영기)와 과한 스킨십을 했다며, 자신이 아니라 방다미가 출산했다고 허위진술을 하면서 SNS상에서 ‘방울이 사건’으로 퍼져나갔다. 이로 인해 방다미는 퇴학되고, 납치돼 총을 맞아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죽은 사람 살리기는 ‘순옥 월드’에서는 식은 죽먹기다. 아파트 고층에서 추락하고, 높은 다리에서 떨어져 죽는 것, 또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언제 일어나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양진모라는 연예기획사 체리엔터테인먼트 대표(윤종훈)는 출산녀를 방다미로 만들어 ‘가짜뉴스’를 유포시키는 인간이다. “이걸 얼굴 없는 살인자 놀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한모네는 고교시절부터 자신의 물건을 아낌없이 친구에게 주는 순백의 천사처럼 행동하지만, 뒤에서는 늘 일진들을 조종하고 밖에서 남자 만나는 개날라리 막장 캐릭터로 설정돼 있다.
연예인이 된 한모네는 팬 33인과 제주로 떠나 티키타카 팬 이벤트를 열고 있다. 이를 조종하는 ‘악의 단죄자’ 매튜 리(엄기준)가 29일 방송된 5회 방송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메튜 리는 억울하게 살인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방다미의 양부 이휘소였다. 복수의 칼을 갈고 매튜 리로 페이스오프 한 그는 본격적으로 플랜을 가동했다.
티키타카 팬 이벤트를 빌미로 한자리에 모여 파티를 즐기던 7인의 악인들은 ‘방울이의 저주’에 동요하다 악성 유투버 주용주(김기두)를 죽이기까지 했고, 외딴섬에 시신을 유기했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린 것은 기괴하고도 잔혹한 풍경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살육전을 벌인다.
한모네 뿐만 아니라, 한모네 소속사 대표 금라희(황정음), 혼동 속으로 질주하는 조폭 출신의 위태로운 남자 민도혁(이준), 엉터리 경찰 남철우(조재윤) 반장 한모네에게 다이아몬드 팔찌를 뇌물로 받았던 고등학교 미술 기간제 교사 고명지(조윤희) 등은 아비규환의 섬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7인의 탈출’ 제작진은 “섬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의 진실이 드러난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짓밟을 수 있는 악인들의 광기가 소름을 유발할 것”이라며 “단죄자의 심판은 시작됐다. 그가 설계한 잔혹한 데스게임에 악인들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기대해 달라”라고 전했다.
‘7인의 탈출’의 시청률은 5.6~7.7%다. 낮은 시청률은 아니지만 김순옥 작가의 명성에는 못미친다. 막장적인 전개임에도 아직 시청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7인의 탈출’ 기획의도를 한번 봤다. ‘수많은 사람들의 거짓말과 욕망이 뒤엉켜 사라진 한 소녀. 소녀의 실종에 연루된 7명의 악인들의 생존 투쟁과, 그들을 향한 피의 응징을 그린 피카레스크 복수극 ’이다.
못된 짓을 하면 심판 받는다는 평범한 내용이다. 악의 단죄자는 메튜 리(엄기준)다. 이 과정에서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고 생존을 위한 악인들의 광기를 보면서 뭔가 느껴보라는 것 같다. 악인들의 잔혹한 생존 서바이벌은 시작됐다.
막장의 고도화와 일상화는 현실을 반영한 것일까? 그나저나 오늘 밤(30일)도 에너지를 잔뜩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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