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금토드라마 ‘연인’ 파트 2가 10월 13일(금) 방송된다. ‘연인’(기획 홍석우, 연출 김성용·천수진, 극본 황진영)은 MBC가 ‘옷소매 붉은 끝동’(2021년) 이후 처음으로 확실한 ‘시청률 1위’에 오른 작품이다. 사극은 역시 MBC가 강하다는 걸 잘 보여준다.
‘옷소매 붉은 끝동’이나 ‘연인’은 조선 정조와 병자호란 시기 등 사극에서 자주 등장했던 때를 다루고 있지만 둘 다 관점의 차별화를 이룬 작품으로 평가된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정조(이준호 분)가 왕으로서 승은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한 남자로서 궁녀인 성덕임(이세영 분)에게 “난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라고 진심 어린 청혼을 했고, 덕임은 이례적으로 왕의 프러포즈를 두 차례나 거절하다 결국 정조의 청혼을 수락했다.
궁녀에게 이렇게 청혼하는 왕도 처음일 것이고, 궁녀가 수동적이지 않고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신(新)궁녀’ 캐릭터라는 점에서 현대적 의미로 연결됐다.
병자호란기, 패배의 역사 아닌 강인한 생명력의 역사
‘연인’의 시대적 배경은 1636년 12월 발발한 병자호란과 그 이후다(지금부터 387년 전인 1636년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존 하버드 청교도 목사가 영국 식민지 시기의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하버드대학을 세운 해이기도 하다).
이 시기를 다룬 사극 등 대다수 작품은 답답하다. 패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인’은 청나라의 공격을 받고 우왕좌왕하는 조정의 이야기보다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백성·민중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다. 죽어가는 게 아닌 살아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그 가능성으로 이장현(남궁민 분), 유길채(안은진 분) 등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또 실제 인물로는 소현세자(김무준 분) 등을 비중 있게 다룬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가능성에 대한 발견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특히 이장현의 대사를 통해서는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집약시킨다. 그래서 장현은 때로는 ‘연인’의 내레이터 같기도 하다.
특히 장현은 소현세자를 멘토링하며 그의 성장을 돕는다. 이미 중국 심양으로 떠나는 길에 장현이 소현을 바라보며 남겼던 “저 가여운 아들의 운명이 조금은 궁금하다”는 말의 의미심장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청에서도 소현이 장현과 지략을 나누는 모습의 공조가 예상됐었다.
소현세자의 성장, 하지만 조선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한계
역사에서 ‘만약에?’라는 가정법을 적용하기는 소현세자만큼 좋은 인물이 드물다. 청나라의 볼모 8년간 심양에만 거주한 게 아니라 북경에서도 몇 개월간 자금성에서 살았는데, ‘심양일기’는 있어 소현세자의 심양생활을 세세하게 알 수 있지만 ‘북경일기’는 없어 북경생활이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소현세자가 북경 자금성에서 만난 아담 샬 신부로부터 천주교를 접하고, 천문과 산학·천주교 서적 등의 선물을 받은 후 보낸 답장 격의 서신은 아담 샬의 회고록에 나온다. 소현세자는 성리학으로만 돌아가는 조선 사회에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자연스레 개혁자로서의 이미지가 구축됐을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 인조에게는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부담과 위협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소현세자의 귀국 후 급사 내지는 독살설의 원인으로 추리된다. 청에서 소현세자와 함께 신문물과 실용주의에 눈을 뜬 세자빈 강빈(전혜원 분)이 사사되는 것도 석연치 않다.
소현세자는 심양에서 처음에는 청나라에서 주는 음식을 먹었지만 음식이 끊기자 조선인 포로 등을 구출해 황무지를 일궈 농사를 지어 국제무역을 하며 경제자립체를 구축한다. 대박이 난 스타트업 사업자로서의 면모를 보인 것. 이것도 인조에게 “사병을 기르냐?”는 의심을 사게 되기는 했지만....
‘연인’의 파트 1에서는 청나라가 인조의 병이 위중해지자 소현세자를 잠시 문병을 겸해 조선에 보냈다. 하지만 소현세자는 다시 심양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돌아가면 소현세자가 어떻게 청의 압박에 대처해나갈지 궁금해진다. 이 점도 ‘연인’ 파트 2의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다.
‘연인’ 제작진은 파트 2에서는 가슴 아픈 이별 이후 장현과 길채가 조선과 청나라를 오가며 보여주는 색다른 공간과 인물들의 격변이 주요 시청포인트가 될 예정이라고 했다.
제작진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로 끌려간 이들의 이야기가 장현과 길채의 운명과 엮여 흥미롭게 전개될 것이다. 또한 파트 1 말미에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파란복면(이청아 분)을 포함해, 구원무(지승현 분), 장철(문성근 분), 소용조씨(소유진 분) 등 파트 1 후반부에 등장한 인물의 새로운 이야기는 물론 이들의 관계에 역동성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서 청나라에 있는 소현세자의 역할도 중요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명-청 교체기의 중국 상황을 알아야 한다
병자호란기는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되는 때다. 명은 대규모 농민반란인 ‘이자성의 반란’과 후금(청)의 침략으로 숭정제가 1644년 자금성에서 자결함으로써 멸망했다.
명-청 교체기에 청나라에서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은 ‘섭정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도르곤이다. 도르곤은 건주여진을 통합한 청태조 누르하치의 14번째 아들이다. 누르하치 사후 8남인 홍타이지가 청의 2대 황제가 돼 조선을 침략했다. 홍타이지가 급사하자 여섯 살의 어린 아들 순치제가 황제를 이어받지만 삼촌인 도르곤이 섭정왕으로 거의 모든 실권을 장악했다.
홍타이지는 생전에 이복동생인 도르곤을 전장에 투입해 다양한 실전을 쌓게 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도르곤은 몽골의 내몽골자치구 등을 침략해 과거 원나라의 옥쇄를 빼앗았고 만리장성을 두고 명과 자주 싸워 요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도르곤은 병자호란 때도 강화도로 피신한 인조의 아들 등 가족을 볼모로 남한산성에 있는 인조를 압박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도르곤은 ‘구왕(九王)’이라는 이름으로 가끔 등장한다. 도르곤은 명나라 자금성을 쉽게 접수했다. 자결의 길을 택한 명나라 숭정제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며 청의 대인배 또는 위엄을 보여줬고, 어린 순치제를 자금성에서 다시 한 번 즉위식을 하게 해 청나라의 중심이 심양이 아닌 북경임을 알렸다.
그런데 도르곤이 자금성에 입성하며 소현세자를 데리고 다녔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소현세자는 명-청 교체기의 긴박한 상황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하지만 소현세자는 인질이다. 도르곤이 소현세자를 계속 데리고 간 것은 명나라를 향해 ‘너희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조선 왕(인조)의 장남인 소현세자는 내 손아귀에 있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르곤도 38세에 죽고, 3번째 황제 순치제가 직접 황권을 행사하면서 도르곤도 직권 남용 혐의로 묘가 파헤쳐지며 부관참시 됐다. 그 순치제의 아들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가장 좋아한다는, 청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강희제이고 옹정제-건륭제의 ‘청 전성기’로 이어진다. 강희제는 무려 62년간 청을 통치했을 뿐만 아니라 한족과 만주족의 문화와 음식을 통합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빅 피처’를 그린 인물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서북공정 마케팅에 가장 적합한 역사적 인물이 강희제다.
인조반정과 사림정치 부활이 초래한 현상
그럼, 조선으로 돌아와 당시 상황을 봐야 할 차례다.
인조는 반정에 의해 비주체적으로 왕이 됐기에 반정 공신에게 휘둘렸다. 반정 공신들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조선의 왕 중 가장 많이(세 차례) 왕궁을 비우고 몽진(蒙塵)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초스피드로 의주까지 먼지를 뒤집어쓰고 피난 간 선조나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도 왕궁을 비우고 러시아공사관으로 파천해 1년여간 머문 고종보다 더 심하다.
인조 때의 상황은 직전 왕인 광해군 때와는 완전히 바뀐다. 동인에서 나뉘어진 온건파 남인과 급진파 북인 중 왜란 이후에는 북인들이 대거 집권해 성리학적 명분론을 공격했다.
하지만 인조반정으로 서인들이 북인들을 내쫓고 사림정치를 대거 부활시켰다. 이들은 주자학을 내세우며 양반문벌사회의 유지에 급급했으며, ‘중화를 존중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화이론(華夷論)을 바탕으로 ‘친명 반금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금-후금-대청으로 이어지는 청나라의 조선 침략 의지를 부추겼다. 조선 외교의 대실책이다.
‘연인’은 조정의 대세가 척화파의 대의명분주의가 향하는 주전론으로 기울자 인조가 아무런 준비 없이 선전 교서를 내려 병자호란을 유발한 당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홍타이지 부대가 남한산성을 향해 쏜 홍이포에 산성 안은 혼비백산이 됐다. 조선은 청을 얕잡아봤지만 머리가 빨간 오랑캐(紅夷=네덜란드인)가 사용하던 대포는 명나라를 거쳐 기술 전수가 이뤄져 청나라도 홍이포를 조선보다 훨씬 먼저 전장에 사용했다.
‘연인’이 이장현과 남연준의 차이를 통해 말하려는 것
‘연인’은 병자호란을 겪으며 엇갈리는 이장현, 유길채, 남연준, 경은애 등 남녀의 사랑과 백성의 생명력을 다룬 휴먼·역사·멜로 드라마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당시 사회와 전쟁을 슬쩍슬쩍 건드리면서 놓치고 있는 문제들을 다룬다는 느낌이 든다. 멜로를 진행시키면서도 국가와 백성의 관계, 리더십 등 역사의 묵직한 부분을 수시로 다뤄 오늘날 국가 운영 문제까지 생각하게 한다.
무능한 왕 밑에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백성의 삶의 방향을 이장현과 남연준 캐릭터의 대비를 통해 당시 백성을 생각하게 하는 전략은 긴 여운을 남겼다.
특히 능군리의 든든한 성균관 유생 남연준은 전쟁 발발과 동시에 의병활동에 나서며 “나라의 근본을 구하는 일”이라고 한다. 반면 이장현은 “난 의병에 나설 생각이 없소이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왜 백성이 임금을 구해야 하나”라고 한다.
남연준은 평소 학문을 갈고닦지만 전쟁이 나면 책을 내려놓고 전장에 싸우러 나가는, 배움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는 위로는 남명 조식의 제자인 북인 정인홍과 북인이면서 남인들과 가까웠던 곽재우의 임진왜란기 의병활동의 맥을 잇고 있다. 남연준은 “조선 백성이 할 일은 비굴하게 살거나 떳떳하게 죽는 일뿐”이라고 했다.
이장현과 남연준이라는 두 인물의 대비와 차이를 통해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남연준은 이장현에 비해 큰 그림을 그리는 것과 유연성에서는 다소 약하다. 정작 전쟁에서 실질적인 공을 더 많이 세우는 쪽은 남연준보다는 ‘전쟁 츤데레’ 이장현이다. 나라를 위한다고 말싸움을 하는 것보다 말과 무기 공급이 더 중요하다. ‘연인’은 전쟁 상황에서 백성으로서 국가를 바라보는 시선과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주요 인물들을 통해 볼 수 있게 했다.
‘연인’이 그리는 인조 시기를 유추, 해석하고 상상하는 작업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사료에 충실하면서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실증적 역사 해석과 실제 역사를 현재적 관점에서 서술하는 해석 방식 그리고 모든 역사는 당대의 관점과 이해관계에 의해 해석된 것으로, 역사의 실체는 없다며 역사를 ‘시뮬라시옹’이라는 열린 텍스트로 보는 포스트모던 역사적 해석 등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연인’은 병자호란과 그 이후의 역사적 지식들을 알게 해주는 효과 외에도 역사 해석과 재해석의 관점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인조에 대해서도 무능한 왕으로 규정해놓고 나면 자괴감만 커진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니 외교에서 실책을 범하게 되고, 명나라를 섬기고 척화파를 중용해 병자호란이라는 결과를 초래해 엄청난 사망자와 전쟁포로, 공녀 등 인적·물적 피해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도 야기했다.
결국 병자호란의 패배로 조선 건국 이래 지속돼온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청산했고, 이후 양반사회에 대한 반성과 개혁운동이 실학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인조 때는 강원도에서 ‘공납의 전세화’로 불리는 대동법이 실시되는 등 개혁이 시행됐지만 근본적인 사회 혁신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역사책에서 배웠다.
인조는 어떤 인물일까? 역사는 암기하는 과목이 아니라 추리하고 해석하며 상상하는 학문이다. 포스트모던 역사 해석법에 따른다면 이런 작업은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인조가 후금(청)을 자극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야기하고 자신은 몽진한 왕이라고 하지만 당시 백성은 그 도전에 어떤 응전을 했는지, 강인한 생명력을 어떻게 발휘하며 역사를 이어왔는지를 추리하는 자체가 의미가 있다. 이는 곧 ‘연인’ 파트 2가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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