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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중기 90%가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호소, 이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 27일부터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지만 해당 중소기업 대부분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50인 미만 회원 업체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준비가 돼 있다’는 사업장은 22.6%에 불과했다. 대상 사업장 4곳 중 3곳 이상이 무방비 상태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법 시행 유예기간을 더 줘야 한다’는 응답자가 89.9%에 달했다.

무려 90%의 중소기업이 법 시행 유예를 요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면 시행하게 되면 산업재해를 줄이자는 본래의 취지도 살리지 못하고 사업주들은 무더기로 범법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개의 중소기업은 사업주가 알파이자 오메가로, 모든 것을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다. 경영관리는 물론 수주와 판매 등 ‘사장님’ 손이 닿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 사업주가 구속되거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되면 해당 사업장은 사실상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런 중소기업이 대략 83개에 이른다. 이 중에는 부품과 소재 등 우리 산업을 떠받치는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도 적지 않다. 경총과 대한상의 등 6개 경제단체가 지난달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요구 성명을 낸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와 함께 법 자체에 대한 효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설문에서 중소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 대처가 힘든 가장 큰 이유로 ‘안전관련법 준수사항이 너무 방대하다’(53.7%, 복수응답)는 점을 꼽았다. 실제 법이 시행된 지 1년이 훨씬 넘었지만 현장 혼선은 여전하다고 한다. 법 조항이 불합리하고 모호한 데다 각종 지침과 절차 등이 너무 복잡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법이 본격 시행된 2022년 산업재해자 수가 전년보다 7600명이 오히려 증가했고, 특히 산재 사망자 수는 143명이 늘었다. 그만큼 법 시행 효과가 없다는 의미다. 중소기업에 대한 유예와 함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당 법 정비도 시급하다.

법 적용에 대비한 정부의 지원도 늘릴 필요가 있다. 설문에서 중소기업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업종별 안전매뉴얼 배포, 안전인력·인건비 지원, 안전투자 재정·세제 지원, 명확한 준수 지침 등이었다. 정부는 지난 유예기간 나름 지원을 해왔다고 하지만 인력과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안전에 대한 투자는 설령 지나쳤다 해도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해당 기업들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부담스럽겠지만 언제까지 미룰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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