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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게 뭐라고 전공까지 해?” 하모니카로 세계를 제패한 이 사람 [인터뷰]
세계 1위 하모니시스트 박종성 인터뷰
한 뼘의 악기로 세상의 모든 음악 연주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은 ‘최초’, ‘최고’의 아이콘다. 하모니카 연주 ‘세계 1위’의 주인공이자, 하모니카 연주로 대학에 진학한 첫 인물이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고작 10~15cm. 한 뼘 크기의 작은 악기에 온 세상 음악이 담긴다. 버스커버스커의 ‘꽃송이가’부터 민요 ‘새야 새야’,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까지. 손바닥 안에 갇힌 악기는 ‘팔색조’다. 때로는 태평소와 생황을 오가는 국악기가 되고, 때로는 클라리넷과 같은 온화한 서양악기 소리를 낸다. 하모니시스트 박종성(37)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빛깔들은 이처럼 다채롭다.

박종성은 ‘최초’, ‘최고’의 아이콘다. 하모니카 연주 ‘세계 1위’의 주인공이자, 하모니카 연주로 대학에 진학한 첫 인물이다. 하모니카 학과가 없던 시절,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학과에 입학해 혈혈단신 외길을 걸었다. 지금의 그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단골 협연자이자 장르를 넘나들며 러브콜을 받는 인기 음악가다.

최근 서울 서초구 뮤직앤아티스트 스튜디오에서 만난 박종성은 “하모니카는 지금도 신기한 악기로 보지만, 지난 10여년 새 더 많은 존중을 받는 악기가 됐다”고 돌아봤다.

편견 많은 대중적 악기…“그걸로 먹고 살 수는 있나?”’

박종성과 하모니카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3학년. 외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는 “할머니가 문구점을 하셨는데 보통 장난감이나 야구 배트를 보내주시다가 그 해엔 하모니카를 보내줘 엄청 실망했다”며 웃었다. 책상 서랍 안에 쳐박혔던 하모니카는 3년 만에 빛을 봤다. 박종성이 하모니카를 처음 배운 곳은 백화점 문화센터. 그 때는 이 날들이 인생을 바꾸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하모니카를 불며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음악이 이렇게 재밌고 행복한 것이란 걸 처음 알게 된거죠.”

하모니카의 장점은 ‘쉽게 배울 수 있는 악기’라는 점이다. 그는 “바이올린, 플루트, 피아노도 배웠지만,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며 “하모니카는 쓱 불어도 예쁜 소리가 나니 쉽게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그만큼 하모니카는 전 국민의 ‘취미생활’이라 할 만큼 대중적이다. 전문 연주자는 적지만, ‘동호인 문화’ 덕분에 취미 인구는 상당하다. 이처럼 ‘대중성’을 가진 작고 귀여운 악기는 사실 편견이 많다. 어린시절 한 번쯤 손에 쥐어본 악기. “나도 좀 분다”고 자랑하기 쉬운 악기다. 그래서일까. “하모니카를 전공까지 해야 하냐”, “하모니카로 먹고 살 수 있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는다.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이 1일 서울 동작구 뮤직앤아트컴퍼니 스튜디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사람들의 신기한 눈빛이 불편한 때도 있었고, 왜 내가 하는 악기만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속상한 적도 있었어요. 대중적 악기라는 편견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과 부담, 오기도 생겼고요. 단지 쉬운 악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 대중성이 장점이라는 생각이 더 커졌어요.”

박종성은 2009년 세계 하모니카 대회 트레몰로 독주 부문, 2011년 전 일본 하모니카 대회 트레몰로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세계 1위’ 타이틀을 안자 그의 음악 인생도 변곡점을 맞았다. 한국인 최초이자 최고라는 수사는 당시 20대 음악가였던 그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줬다. 그는 “하모니카를 얼마나 잘 부는지 뽐내려 하는 나의 모습에서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을 했다”며 “하모니카를 잘 부는 기술자가 아닌, 음악 안에 감정과 생각, 철학을 담아내는 예술가가 돼야 한다는 생각의 전환점이 된 때”라고 돌아봤다.

“전 기술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하모니카를 도구 삼아 제가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 저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그래서 전 하모니카 연주자라는 자아보다는 음악가라는 자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USB 크기부터 60~70㎝까지…최고가는 1000만원

하모니카의 세계는 심오하다. 누구나 다룰 수 있지만, 모두가 같은 수준의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래리 아들러, 토미 라일리 등 20세기 클래식 하모니카의 거장 연주자들로부터 이어온 역사가 깊다. 국내 ‘1호 전공생’인 박종성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그는 “하모니카는 각 장르에 맞게 변신하는 악기”라며 “입모양, 호흡 방법, 연주 스타일에 따라 같은 악기라도 장르에 어울리는 음색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하모니카는 악기 종류도,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종류만 해도 무려 150가지. 길이도 음색도 용도도 저마다 다르다. USB(이동저장장치)만한 크기부터 60~70㎝에 달하는 크기도 있다. 박종성은 “각각의 곡이나 콘서트에 맞춰 하모니카를 선택한다”며 “60여㎝에 달하는 하모니카는 리듬이나 화성을 연주하는 코드 하모니카”라고 설명했다. 반주할 때 주로 쓰는 악기다. 박종성이 가지고 있는 악기만 해도 7~8개. 하지만 하모니카는 소모품인 탓에 지금까지 사용한 악기는 100개가 넘는다. 가장 비싼 악기는 가격이 1000만원이나 한다.

작은 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변화무쌍하다. 박종성의 연주는 언제나 느슨했던 공연장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익숙한 악기에서 들려오는 상상도 못한 소리,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호흡과 소리의 향연은 관객들을 늘 긴장시킨다. 그는 “하모니카는 적은 호흡으로도 오랫동안 연주를 할 수 있는 악기이고, 다른 관악기와 달리 들이마시고 내쉬는 모든 호흡에서 연주가 가능해 부는 방법이 어렵지는 않다”며 웃었다.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이 1일 서울 동작구 뮤직앤아트컴퍼니 스튜디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중요한 것은 ‘섬세한 컨트롤’이다. 박종성은 “눈으로 보면서 연주하는 악기가 아니고 감각으로 연주해야 하기에 틀리지 않고 연주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특히나 ‘일상의 숨’으로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수로 치면 말하듯이 노래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지나친 호흡과 압력으로 연주하면 도리어 미운 소리가 난다.

2012년 예술의전당 데뷔 무대를 기점으로 프로 하모니시스트로 활동한 지 어느덧 10여 년이다. 하모니카를 위한 레퍼토리가 많지 않아 그는 직접 작곡, 편곡을 하며 악기를 잘 살릴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음반도 5장. 오는 21일엔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와의 듀엣 공연(강남씨어터)도 앞두고 있다. 그의 한결같은 바람은 ‘행복한 하모니시스트’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도 지금처럼 행복하게 연주하는 게 꿈이에요. 무대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하모니카를 하는 이유가 사라질 것 같아요. 음악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게 된 것이 제 음악의 뿌리이니까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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