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여행선임기자] 전직 세계일보 기자 조진태 작가가 ‘난중일기 - 종군기자의 시각으로 쓴 이순신의 7년 전쟁’, ‘징비록 - 종군기자의 시각으로 회고한 유성룡의 7년 전쟁’에 이어, 역사인문학 여행서 ‘이순신의 바다, 조선 수군의 탄생- 난중일기에 기록된 남해의 섬과 바닷길 순례기(주류성출판사,328쪽)’를 펴냈다.
일종의 21세기 현재의 현장 여행에 기반한, 역사기행문이다. 우리는 요즘 드라마계에서 유행하는 이런 장르를 ‘시간여행’, 타임슬립이라 부른다.
한산도 |
조진태 저, ‘이순신의 바다, 조선 수군의 탄생- 난중일기에 기록된 남해의 섬과 바닷길 순례기(주류성출판사,328쪽)’ |
나폴레옹을 무찌른 웰링턴 제독 보다 뛰어난 전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 충무공 이순신 제독(통제사)은 1592~1598년 7년 전란 내내 남해의 섬을 훑고 다녔다.
그가 전란 내내 보여준 부단한 노력과 준비과정을 보면 “아, 이런 지도자도 있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이순신이 애초부터 군신(軍神)이었다면 모든 승리는 의미가 없다. 인간 이순신이었기에 그 승리와 노력이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노력을 압축해 결국 서애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통제사를 군신이라고 일컫는다. 통제사의 자취가 서린 남도의 섬과 바다는 곧 군신의 섬과 바다이기도 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유적은 훼손되고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지만, 산과 바다, 지리와 지형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통제사가 시름에 젖어 봄비를 맞으며 서있었던 한산 수루 앞바다는 지금과 그때가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도 아름다운 남해 관음포의 일몰은 통제사가 전사한 노량해전의 마지막 승전보 앞에서 통곡하는 조선 수군 진영을 처연하게 물들였을 것이다.
유적을 따라가는 여행은, 그 상상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더하면서 보다 쉽게 역사에 접근하는 매력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조진태 작가는 역사 기행문을 통해 통제사의 삶, 조선 수군의 삶, 나아가 전란의 아픔을 한번 돌이켜보려고 시도했다. 작가는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유성룡의 징비록, 조선왕조실록 등을 참고해 임진란(1592년) 당시 수군의 활약상과 칠천량 해전에서 붕괴된 조선 수군의 재건과정을 묘사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역사 기행문으로 작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황에 따라 조선 수군 사령부가 옮겨 다닌 남해안 일대 및 일부 서해안의 바다와 섬을 집중적으로 조명했고, 그 시절의 흔적과 이순신, 조선 수군이 강건하게 키워온 불멸의 정신을 담고 있는 각종 대표적인 유적지도 소개했다. 또 임진란 전황은 사료에 기초해 3인칭 관찰자 시점인 르포 형태로 서술했으며, 사료에서 확인될 수 없는 불필요한 가정이나 상상은 최대한 배제하고 당시 전투를 객관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임진란 극복의 주역 전라좌수군을 중심으로 당시 조선 수군의 편제을 면밀히 취재했다. 임진란 당시 조선의 다섯 수영 중 수군 전투의 핵심 전력이었던 전라좌수영을 중심으로 수군 편제를 소개한다. 임진년 2월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좌수영 관할 지역인 5포의 순찰에 나섰는데, 5포의 순찰경로를 따라가면서 여전히 남아 있는 그때 흔적과 유적을 책 머리에 소개했다.
명량대첩의 울돌목은 지금도 거칠고 빠른 바다 조류가 멀리서도 보인다.[한국관광공사 제공] |
임진란 5년 전에 터진 손죽도 왜변(1587년)은 조선 수군이 형질을 변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21세의 젊은 나이인 녹도만호 이대원이 전사했지만, 그는 군인의 기상을 한치도 어그러트리지 않았다. 이후 조선 수군, 특히 전라좌수군은 대대적인 왜침에 대비, 판옥선에 함포를 탑재하는 새로운 해상전투방식을 준비한다.
임진란이 발발한 뒤, 부산포 해전에서 역시 녹도 만호 정운이 전사하자 이순신은 전란 이후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정운을 이대원과 한 사당에 배향토록 한다. 조선 수군의 선봉, 녹도군은 좌절과 극복을 거듭하면서 강군으로 단련되었고, 그 기상의 출발지는 손죽도로 볼 수 있다. 이순신이 전사한 무술년(1598년)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의 격전지, 남해의 관음포에서 이순신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기행문은 매듭된다.
햇수로 5년 동안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영을 이끌고 주둔한 한산도는 섬 전체가 이순신의 정신이 곳곳에 녹아 있는 유형·무형의 유적지이다.
따라서 수군사령부가 있었던 제승당은 물론이고 의항마을 등 한산일주로를 따라 한산도 곳곳의 마을을 찾아 통제영의 당시 흔적을 담았다. 이 기간 통제사는 왜 수군을 부산포에 밀어 넣고, 육군과 연합해서 마지막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전력을 비축했으나 원균이 칠천량에서 패전, 이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다크투어리즘’의 장소인 칠천도에서는 전란 속에 살아가는 당시 백성들의 아픔을 전달하기 위해 주력했다고 작가는 전했다.
이순신이 ‘기적 같은 승리’라고 토로한 명량해전을 통해 회생을 알린 조선 수군은 이후 새로운 기지 탐색을 위한 오랜 항해 길에 나선다. 당사도를 비롯해 위도와 고군산군도, 안좌도 등 서해안 일대에서 몸을 추스린 조선 수군은 고하도에 사령부를 구축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 기간 통제사는 셋째 아들 면이 전사하는 개인적인 고통 속에서 무너진 수군을 되살려야만 했다. 또 정유년에는 사랑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했다. 전란이 다시 시작된 정유년은 조선 백성에게도 이순신에게도 잔혹한 시간이었으며, 그럼에도 군무에 몰입해야 했던 이순신의 눈물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조선 수군은 진린이 이끄는 명나라 수군과 고금도에서 연합군을 구축한 뒤, 제2 한산해전으로 불리는 거금도에서 조선 수군의 부활을 알린다. 또 묘도와 장도를 중심으로 왜 수군의 숨통을 끊기 위한 막바지 전투에 돌입한다. 이어 남해 관음포에서 도주하는 시마즈 군대를 요격하기 위한 마지막 출정에 나서, 관음포에서 통제사가 전사한다. 종군기자의 마음도 아려온다. 전직 사회부 기자 출신인 작가는 치열하고 긴박했던 임진란의 막바지 수군전을 당시 유적을 세세히 되돌아보면서 스케치했다.
거금도와 거금대교, 그리고 소록도 |
기자에게 작가라는 표현은 요즘 드라마 유행어로 치면 ‘좀 그렇다.’
팩트와 픽션 사이의 미스매칭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생동감 있는 실증적 과거 재생이라는 기능을 수행하는데는 두 직역의 기능이 합해질 때 최고가 된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다음은 조진태 작가가 본문을 다 쓴 다음 머릿말에 기록한 저서 오버뷰와 자기 원고에 대한 자평.
“구체적인 조형물이나 유적이란 정신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의 이것’이 ‘그때 그것’이 아닌 경우라도 후손들은 유적을 통해 선대의 정신을 기리고 이를 계승하려고 노력한다. 한산도 제승당의 경우에도 당시 통제사가 수군 최고 사령부를 꾸리고 군사 작전을 논의하던 운주당과는 사뭇 다르다. 후대에 두 번이나 복원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제승당을 통해 통제사의 정신을 되새기며 이를 교훈으로 삼는다면 제승당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추상화된 정신은 유적이나 조형물을 통해 구체화 될 때 그 맥락을 쉽게 전달한다. 따라서 유적이나 조형물 소개에 국한하지 않고 통제사의 정신이나 삶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을 동시에 기울였다. 유적 설명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간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적은 객관적인 사물이지만 이 사물에 주관적인 해석이 가미되어야만 역사적인 생명력이 부여된다. 다만 주관성이 일정한 보편성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공감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이를 위해 난중일기, 징비록, 선조실록 등을 참고, 해석의 주관성이 자의성이 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지나치게 신격화되거나 당시 전황으로 보아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가 얽힌 장소는 모두 생략했다.
선조실록 등 역사서는 딱딱한 활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관심과 흥미를 기울이면 그 시대의 사람과 삶을 상상하는 무한한 즐거움을 얻는다. 유적을 따라가는 여행은, 그 상상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더하면서 보다 쉽게 역사에 접근하는 매력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역사 기행문을 통해 통제사의 삶, 조선 수군의 삶, 나아가 전란의 아픔을 한번 돌이켜보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문헌의 고증과 잘잘못을 따지는 서술보다 그 시절에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사람과 삶에 대한 문학적 상상과 통찰을 위해 전력했다. 다만 그 깊이가 주어진 재주만큼 허용되었음을 미리 고백한다.”
조진태 저, ‘이순신의 바다, 조선 수군의 탄생- 난중일기에 기록된 남해의 섬과 바닷길 순례기(주류성출판사,328쪽)’ |
조 작가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세계일보 사회부, 국제부, 경제부에서 법원, 대검찰청과 대법원,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을 출입했다. 이후 국회의원 보좌관(국회사무처 별정직 공무원 4급)과 디지털타임스 기자로 일했다. 강남 대치동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했고 지금은 경남 양산의 효암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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