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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미국 뉴욕에서 빅테크의 임원으로 일하는 레이첼은 승진 보너스로 ‘인공 자궁센터’를 예약할 기회를 얻는다. 큰 달걀 모양의 ‘팟’에 인공수정한 배아를 넣어 10개월 동안 키우는 것. 레이첼은 이 팟을 가방처럼 들고 다니거나 집에 두고 출퇴근한다.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을 우려한 레이첼의 선택이자 회사의 ‘배려’였다. 이 이야기는 인공자궁 팟으로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한 신혼부부를 그린 미국 SF(Science Fiction) 영화 ‘팟 제너레이션’(2023)이다.
‘팟 제너레이션’에서 나오는 인공자궁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들의 삶에 얼마나 큰 도전이자 어려운 과제인지 간접적으로 대변한다. 여성은 임신 열 달 동안은 물론, 출산 이후에도 수많은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겪는다. 이로 인해 겪는 커리어적 피해는 그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이보다 더 큰 책임감과 두려움을 안겨준다.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신간 ‘출산의 배신’ 저자인 오지의 작가는 출산이 왜 이토록 유감스러운 일이 됐는지, 임신과 출산을 힘들게 하는 ‘배신’ 요소들을 따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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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선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요구하는 그릇된 모성 신화를 파헤친다. 모성 신화가 묘사하는 완벽한 여성은 혼자서도 양육과 살림을 거뜬히 해내고, 남편 내조까지 잘하는 아내이자 엄마다. 모성 신화가 널리 퍼져 있는 사회에서 이에 부합하지 못한 여성들은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모성이 마치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호로몬의 작용 및 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본성과 함께 학습의 상호작용에서 두드러진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무너지고 있는 출산 인프라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지난해 새롭게 배출된 산부인과 전문의 171명 가운데 남성은 6명으로 전체의 6.7%에 불과하다. 이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의 절대적인 성별 격차는 결국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이해 부족으로 이어진다고 꼬집는다. 공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선 성별을 가리지 않고 사회 구성원을 아우르는 합의가 필요한데, 한쪽 성별이 점점 배제되면 결국 출산 관련 의제를 공적 영역으로 끌고 나오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출산과 양육에 있어서 조력자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류학자 새라 블래퍼 허디에 따르면, 인간은 예로부터 다양한 대행 부모를 확보해왔다. 아버지, 조부모는 물론이고, 친인척, 친구 등도 육아에 협력했다. 인간은 대행 엄마를 가장 적극 활용하는 종족으로, 육아가 엄마에게만 독점적으로 주어진 몫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모성 신화적 관점에서 이러한 조력자의 역할은 가려지거나 사라지고 있다. 저자는 육아에 대한 모든 공과 과, 노동과 책임이 엄마에게만 돌아가는 현상이 인류사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결국 해법은 과도한 모성 신화의 부담을 줄이는 한편, 촘촘한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여성의 육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출산과 양육은 엄마 ‘혼자’서 몸과 마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비극이 아니라, 인류 초창기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출산의 배신/오지의 지음/에이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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