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협연
“임윤찬의 순수성과 재능 존경”
피아니스트 장 에플람 바부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임윤찬의 재능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가 가진 순수성과 재능을 존경합니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노 거장’ 장 에플람 바부제(61)에게 ‘그날들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다. 2022년 열린 제16회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음악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만났을 때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3월 9일·롯데콘서트홀)을 위해 내한한 바부제는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그가 무대에 나와 첫 음을 눌렀을 때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 재능은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며 감탄했다.
임윤찬은 1962년 시작한 이 콩쿠르에서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제16회 콩쿠르는 당초 2021년 열려야 했으나, 팬데믹으로 1년 늦게 열리며 만 18세의 임윤찬은 나이 하한선(만 18~31세)을 통과해 콩쿠르에 출전할 수 있었다.
바부제는 콩쿠르 이후 임윤찬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는 “임윤찬의 성장에 대해 확신한다”며 “그는 좋은 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콩쿠르 우승에 안주하지 않고 피아니스트로서 ‘성장의 길’을 걷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임윤찬이 콩쿠르 우승 이후 선택한 레퍼토리만 봐도 존경할 만해요. 콩쿠르에서 그를 세상에 알린 레퍼토리들로 쉬운 길을 갈 수 있었지만, 대신 레퍼토리 확장을 선택했죠. 위그모어 데뷔로 선택한 바흐도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장 에플람 바부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바부제는 영국 왕립노던음악대학 피아노과 국제 학과장이자 다양한 음악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전 세계의 많은 연주자들을 만나왔다. 그는 “음악가들은 국적에 따라 일반화할 수는 없다”며 전 세계의 연주자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특히 “우리 곁에는 열려 있고, 재능있고 배우려 하며, 궁금증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며 “젊은 음악가들에게 그러한 점을 발견하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최근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한국인 연주자로는 피아니스트 김정은을 떠올렸다. 바부제는 김정은에 대해 “영국 모트람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무대에서 너무나도 아름다운 슈베르트를 연주했다”며 “젊은 음악가들이 이처럼 ‘음악의 불꽃’을 옮겨가는 것이 감동적”이라고 했다.
바부제는 ‘대기만성형 음악가’로 불린다. 1986년 독일 ‘국제 베토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이듬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영 콘서트 아티스트 오디션’을 통해 데뷔하며 일찌감치 세계 무대로 향했으나 그가 주목을 받은 것은 30대에 접어들면서다. 1995년 지휘 거장 게오르그 솔티(1912~1997)가 그에게 파리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기회를 줬다. 이후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가 됐다.
바부제에겐 수사가 많다. 그 중 하나는 현존 최고의 ‘라벨 스페셜리스트’. 이번 한국 공연에서도 라벨의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피아노 협주곡 G장조,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지휘를 맡은 윤한결(32)은 “평소 라벨 피아노 협주곡은 많이 지휘해봤지만, 이번엔 협연자가 바부제이기에 부담이 된다”며 “라벨 작품 연주에 있어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어쩌면 톱인 피아니스트 바부제와 함께 하기에 그만큼 기대를 맞춰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작곡가의 두 협주곡을 연이어 듣는 것은 관객들에게도 색다른 재미다. 바부제는 “한 무대에 두 작품을 올리며 이들이 지닌 차이점을 강조할 수 있다”며 “두 작품이 가진 차이점이 드러날 때 반대로 공통점 또한 명확해진다”고 했다.
“두 작품은 스페인 음악, 아시아 음악, 재즈처럼 전혀 공통점이 없는 장르들이 만화경이나 패치워크와 같이 엮여 있어요.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 협주곡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전하죠.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기쁨과 생기에 차 있고 멜랑콜리한 반면,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은 어두우며 때로는 견디기 힘든 강도의 감정을 끌어내기도 합니다.”
장 에플람 바부제의 마스터 클래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바부제의 내한은 벌써 다섯 번째다. 2013년 10월 첫 내한 연주를 시작으로 2017년 독주회, 2019년 서울시향 협연, 2022년 KBS교향악단 협연 등을 통해 한국 관객과 자주 만났다.
그는 “난 유럽에서 ‘젊은 음악가들은 음악과 예술을 지키기 위한 선교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한다”며 “지금 유럽에선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줄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젊은 관객이 공연장을 찾고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지는 현상이 매우 아름답고 나를 감동시킨다. 이러한 점이 나를 자꾸 한국에 오게한다”고 말했다.
연주 일정은 단 하루지만, 진작에 서울에 도착한 그는 지난 6일 한국에선 처음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다. 아직 프로의 세계로 발을 딛지도 않은 10대 연주자(강동휘, 조유민)와 30대 연주자(현지윤)를 만난 자리에선 교육자 바부제의 열정이 묻어났다. 그는 “마스터클래스는 짧은 시간동안 빠르게 한 사람의 음악과 연주에 대한 기대와 질을 진단해야 한다”며 “큰 변화와 성과를 짧은 시간 안에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마스터클래스”라고 했다.
3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수업엔 바부제의 음악관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하나의 작품을 대할 때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는 거장의 면모를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음악을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귀는 훈련이 되고, 그것이 연주에 영향을 미쳐요. 여기에 더해 작곡가의 삶과 작품이 쓰였던 배경, 작품의 구조, 악보에 담긴 미세한 디테일을 정확히 알아야 우리가 해석하는 작품에 대한 비전이 명료해지죠. 한 명의 작곡가에 대해 완전히 알고, 무엇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는지 더 깊이 중심으로 들어가 파악해야 해요. 모든 음악가가 가져야 하는 나의 연주에 대한 확신은 그제야 생기고, 그때서야 자유로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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