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헤럴드광장] 특권폐지 선언한 선량후보 당선시켜야
[헤럴드DB]

일반 국민의 정치에 대한 인식은 30년 전 고(故) 이건희 회장이 촌철살인한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가 여전히 유효하다. 이 같은 인식 고착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치가 여전히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는 헌법적 가치로서의 평등권은 헌법 제 11조에 명징하게 기술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무려 186개의 특권은 헌법 11조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폐지되어야 할 대표적 특권은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다.

이들 특권에 대한 방어논리는 군색하기 짝이 없다. 헌법 46조에 명시된 ‘국회의원의 청렴의무’에 대한 반대급부로 특권이 부여됐다는 것이다. 이들 특권은 국회의원의 직무수행 과정에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주기 위한 제도장치이며, 영국에서 국왕에 대항해 쟁취한 1603년 의회특권법(Privilege of Parliament Act)이 그 뿌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청렴의무는 그 자체가 ‘공동선(善)과 당위’이기에 특권이라는 반대급부가 주어질 이유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왕정시대가 아니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과거 폭압적 정권에서 의정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악’으로서의 순기능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특권이 남용되면서 역설적으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독소로 작용하고 있다. 불체포 특권 상당수는 의원 개인에게 집중된 비리를 막는 ‘방탄’으로 악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재명 대표 방탄국회’ 논란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면책특권 또한 ‘아무 말 대잔치’를 허용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지지층 선동을 목적으로 내뱉는 말까지 면책특권으로 보호할 필요는 없다. 면책특권은 가짜뉴스의 진원지로까지 타락했다. 김의겸 의원의 청담동 발언이 그 사례이다. 국민들은 잘못된 말 한마디로도 민·형사 책임을 진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을 이용해 각종 추측을 쏟아낸다.

공무원과 자치단체장, 지방의원은 구속되면 최대 80%까지 봉급이 깎인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확정 판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거해 전액을 받는다. 공무원과 자치단체장은 안 되는데 자신들만 무죄추정 원칙을 적용받는 것 차체가 특혜이다. 21대 국회에서 뇌물수수와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된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정정순, 국민의힘 정찬민 의원은 의원직이 상실될 때까지 매월 입법 활동비와 차량 유지비를 수령했다. 형이 확정되면 그동안 받은 수당에 대한 환수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현행법은 지방자치단체장의 ‘3선 이상’ 연임을 금지하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내도 도지사와 시장, 군수는 3연임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같은 논거로 국회의원도 3연임을 금지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소선거구제도 하에서 연임제한을 하지 않으면 정치신인을 키울 수 없다.

국회의원은 예산절약의 유인을 갖지 못한다. 지난 10년간 국회 예산은 40%, 인력은 13% 증가했다. 2013년 국회 예산 5218억원은 2023년 7306억원으로 증가했다. 늘어난 예산 2000억원 중 절반은 인건비였다. 국회의원 1인당 최대 9명의 보좌진은 지나치다. 지금은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 등 입법활동 인프라가 구축되었기에 그만큼 국회 보좌진을 줄일 여지는 충분하다. 국회의원의 세비도 과다하다. 국회의원이 스스로 자신의 세비를 결정하면서 ‘이권 카르텔’이라는 힐난을 듣는 것이다.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정신에 맞게 행동하는 길이다. 문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이다.

정치 개혁을 가로막는 건 역설적으로 다름 아닌 국회의원 자신들이다. 제 살을 깎는 것이 개혁이라면 개혁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여야 의원에게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 참여를,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도 1호 혁신안으로 ‘불체포특권 포기’를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모두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후보에게 사전에 ‘정치적 구속력을 가진 특권폐기 선언’ 여부를 하게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joze@heraldcorp.com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