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박동규 자택서 친필노트 확인
“청록파 서정시 넘어 새로운 면모”
박목월 시인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박목월 시인 미발표 육필 시 공개 기자회견에 앞서 박목월 시인 육필 시 노트를 들어보이고 있다. 작은 사진은 박목월 시인의 생전 모습 [연합] |
“오늘은.../참된 시인. 참된 시인이/되어보리라. 이 어리고 측은한/소망을/만인의 가슴에 꿈을 나누고/위안을 베풀고/그 가슴을 내 가슴처럼 드나드는.(후략)(박목월 육필시 중 ‘무제’)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참된 시인이 되겠다는 작가의 여리지만 간절한 소망이 작품에 켜켜이 담긴 작품이다. 윤동주나 이육사 등 저항 시인의 결기가 느껴지지만, 사실 작가는 예상 밖의 인물이다. 바로 청록파의 대표 주자인 박목월이다. ‘나그네’와 ‘청노루’, ‘4월의 노래’ 등 목가적 시로 유명했던 그는 최근 미공개 육필시가 공개되면서 작품세계가 재조명되고 있다.
박목월유작작품발간위원회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목월(1915~1978)이 1930년대부터 작고한 1978년 3월 전까지 쓴 미발표 시 290편 중 문학적 가치 등을 고려해 선정한 166편의 육필시를 공개했다.
잠들어 있던 박목월의 미공개 시가 대거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장남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의 자택에서 그의 친필 노트 62권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6·25 전쟁통에도 지아비의 습작 노트를 짊어지고 피란을 갈만큼 ‘시인의 아내’로서 의지가 높아 오랜 세월 노트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게 박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이에 지난해 8월 우정권 단국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박덕규 단국대 명예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전소영 홍익대 초빙교수 등 평소 뜻을 같이했던 국문과 학자들이 의기투합해 발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경북 경주 소재 동리목월문학관에 보관 중인 18권의 노트까지 확보, 그의 미발표 작품들을 모두 찾아냈다.
유작품발간위의 조사 결과, 박목월은 등단 전후인 1930년대부터 말년인 1970년대까지 총 318편의 시를 썼다. 이중 기존에 발표된 시를 제외하면 290편을 새로 발견한 것. 여기에 기존 발표 내용과 겹치거나 미완성 작품 등을 제외해 총 166편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박목월은 그간 청록파 시인의 대표주자로, 주로 목가적이거나 서정적인 작품을 주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작품을 보면, 그를 한 가지 시풍(詩風)으로만 분류해선 안될 만큼 다양한 주제를 다룬 시가 많았다. 유작품발간위 위원장인 우정권 교수는 “(이번 육필시 공개로) 박목월 선생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한국 문학사 다시 써야 할 정도”라고 했다.
실제로 이날 공개된 고인의 작품은 자연적, 서정적인 내용 뿐 아니라 ▷일상적 생활 ▷기독교 등 신앙 ▷동시와 같은 동심▷고향과 타향의 삶 ▷시인의 삶과 사람과의 만남 ▷가족과 어머니, 사랑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특히 6·25 전쟁 고아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본 ‘슈샨보오이’나 어머니를 자신의 거울처럼 표현한 ‘밤 정거장’, 어떤 여인을 만나 헤어지는 과정을 그린 ‘무제’ 등은 발간위원들이 수작으로 꼽을 정도다. 하지만 박목월 특유의 시적 형상화나 입에 착착 붙는 운율은 여전했다.
박 명예교수는 “아버지가 하늘에서 “뭐하러 했노”라 하실까봐 작품을 공개하면서도 겁이 났다”며 “아버지를 해방 이후부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시를 안고 살아간 1세대 (시인의) 중심적 인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박목월 시는 운율이 있어 40여편의 시가 노래로 창작될 정도”라며 “박목월 관련 영화나 뮤지컬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고인의 시가 널리 알려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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