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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조종사 생텍쥐페리
‘남방우편기’ 표지(왼쪽)와 ‘야간비행’ 표지 [필자 제공]

여가시간이 생길 때면 필자는 국내외 헌책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거나 직접 헌책방 거리를 거닐어 보기도 한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의 헌책을 구입하기도 하는데 며칠 전엔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 1900~1944)의 ‘남방우편기’와 ‘야간비행’이 프랑스의 어느 헌책방으로부터 도착했다. 한 권당 우편료를 포함하여 10~15유로의 비용이 발생했는데, 저자의 사인이 들어있거나 초판본은 아니지만 발간된 지 족히 70~80년은 넘는 책들이었다. 불어를 할 줄 모르는 필자가 이 책들을 구한 것은 오로지 생텍쥐페리가 비행기 조종사였다는 사실과 비행기가 그려진 책의 표지 때문이었다.

먼저 도착한 ‘야간비행’은 문고본 크기인데 표지 오른쪽에 조종모를 쓰고 고글을 이마에 걸치고 있는 조종사의 얼굴 옆모습과 함께 복엽기가 하늘을 비행하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남방우편기’는 하드커버로 장정이 돼 있는데 표지 그림은 앞쪽에 전신 조종복을 입은 조종사가 짙은 색으로 표현돼 있고 뒤쪽으로는 옅은 색으로 프로펠러를 단 비행기가 실루엣으로 그려져 있다. 실제 이 소설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비행기가 어떤 기종인지 시대적 배경 등은 나중에 더 알아볼 생각이다.

생텍쥐페리는 1921년 공군에서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고. 1926년 프랑스 툴루즈의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입사하는데 이 항공사는 나중에 ‘에어 프랑스’로 거듭난다. 먼저 남방우편기는 1929년에 발간됐다. 툴루즈에서 모로코와 세네갈을 거쳐 남아메리카로 오가는 편지를 비롯한 우편물을 운송하는 항공우편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무전 : 현재 시각 6시 10분, 여기는 툴루즈 각 기항지에 알림. 프랑스발 남아메리카행 항공우편기, 5시 45분 툴루즈 출발. 이상.” 그리고 마지막은 이렇게 끝맺는다. “무전 : 여기는 세네갈 생루이. 툴루즈에 알림. 프랑스발 남아메리카행 항공우편기 티메리스 동쪽에서 발견됨. 부근에 비적 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됨. 조종사는 피살됐고 기체 파손됨. 우편물은 무사함. 우편물 다카르로 공수했음”. 생텍쥐페리는 모로코 사막의 작은 중계기지에서 근무하며 이 작품을 썼는데 조종사로서 실제 경험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비행에 대한 열정을 녹여냈다.

야간비행은 1931년에 발간된 두 번째 소설로서 소설가로서의 생텍쥐페리를 각인시킨 작품이라고 전해진다. 당시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지드는 생텍쥐페리의 소설을 ‘비행문학’으로 정의하면서 서문에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서정적이고 몽상적이며 세련되면서도 참신한 문체로 쓰인 작품들을 읽으면 그들의 비극적인 용기와 고귀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서술했다.

남아메리카의 칠레·파라과이·파타고니아 세 나라에서 출발한 항공우편기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하여 암흑과 폭풍우를 뚫고 비행한다. 각국에서 비행기가 도착해야만 다시 유럽으로 향하는 항공우편기를 띄울 수 있다.

주인공 리비에르는 언제나 긴장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어서 냉혹하지만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파타고니아에서 출발한 조종사 파비앙의 비행기는 폭풍과 구름 밖 별과 달의 세계에서 지상과의 교신이 두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의 유럽행 항공우편기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내며 프로펠러를 다시 돌린다.

문학평론가들은 소설 남방우편기와 야간비행을 통해, 독자들은 마치 새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상상에 빠져들게 된다고 상찬하였다. 1920~1930년대에는 비행기가 오늘날과 같이 일반화돼 있지 않은 시기라는 점에서 독자에게는 간접 경험이 됐을 것이다.

두 소설뿐만 아니라 이후에 발간한 ‘인간의 대지’(1939년), ‘전투비행사’(1941년) 등은 조종사로서의 생텍쥐페리가 소설가로서 ‘자기객관화’에 성공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인의 필독서인 ‘어린왕자’(1943년)의 도입부에도 “나는 비행기 조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된 나는 닥치는 대로 날아다녔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실제 그가 겪었던 사막에서의 불시착이 어린 왕자와 조우하는 계기가 됐고 보아구렁이, 소혹성 B-612, 바오밥나무, 양, 꽃, 활화산, 임금님, 허영심 많은 사람, 술꾼, 사업가, 지리학자, 메아리, 여우, 장미 등 주옥같은 상상력과 잠언과 삽화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생텍쥐페리는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1944년 어느 날, 지중해에서 정찰 비행을 수행하다가 실종됐다. 어쩌면 비행기 위에서 소설을 쓰고 비행기와 함께 소설처럼 사라졌다. 프랑스 헌책방에서 날아온 두 권의 생텍쥐페리 작품으로 인해 어린왕자부터 그의 대표 작품들을 찬찬히 읽어보는 봄날을 보냈다. 봄꽃 향기를 만나기 앞서 항공우편으로 날아온 책 봉투를 개봉하는 순간 퍼져오는 헌책 특유의 냄새는 마치 시간의 깊이를 품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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