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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지역·필수 의료 민낯 드러낸 아기사망 비극

지난 30일 충북 보은에서 생후 33개월 된 아기가 물에 빠져 숨진 일이 벌어졌다.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응급처치를 받고 맥박이 돌아왔지만 대학병원 11곳에서 이송이 거부돼 3시간 만에 사망한 것이다. “인력·병상이 부족하다” “이송 가능한 환자 상태가 아닌 것 같다” 등의 이유로 거부됐다는데 열악한 지역·필수 의료현실이 또 한 번 드러난 것이다. 특히 소아과는 폐과가 임박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태가 심각한 게 우리 의료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근무시간을 줄여 외래진료를 최소화하고, 개원의들도 ‘주 40시간’ 진료에 나서겠다고 한다. 의료공백이 더 커져 환자들의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아이는 비닐하우스 옆 1m 깊이 도랑에 빠졌다가 아버지에게 구조돼 119구급대의 심폐소생술을 받고 지역병원으로 옮겨졌고 CPR 과정에서 잠시 맥박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 대학병원 11곳에 전원을 시도했지만 인력·병상 부족 등을 이유로 끝내 거부돼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숨졌다. 병원 밖 심정지환자의 경우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5% 미만이라지만 일말의 희망이 꺾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이가 처음 이송된 병원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었다. 충북 지역 전체로 소아전문 응급의료센터도 없고 소아외과 전문의도 전무하다고 한다. 지금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대란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지방 필수의료 체계가 망가졌다는 얘기다. 지방에선 수술할 의사가 없어 환자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일이 이미 수년 전부터 벌어졌지만 모두 나 몰라라 한 결과다.

서울 등 수도권이라고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다. 빅5 병원도 소아과 전공의를 채우지 못할 정도로 사태는 악화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급여진료가 대부분인 소아청소년과의 너무 낮은 수가 탓이 크다. 병상을 늘릴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니 병상을 줄이고 투자를 안 하니 의사들도 지원을 하지 않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최근 소아 대상 고위험·고난도 수술 수가를 10배까지 인상하겠다고 했지만 당장 나아질지는 미지수다.

기피과가 나오지 않도록 기형적인 수가를 바로 잡고 환자를 마음편히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 일선 의사들의 정책적 조언은 필수다. 의사 수를 늘린다고 진료 거부에 나설 게 아니라 국민 누구나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찾는 데에 정부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런 게 국민 생명과 건강을 우선에 둬야 할 의사의 할 일이고 신뢰를 높이는 일이다. 정부도 세밀한 재정 뒷받침을 통해 의사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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