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실종자 이재몽 씨의 어릴적 묘비 사진. |
[헤럴드경제(광주)=박대성 기자] 1980년 5월 마늘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도와 지게에 마늘을 짊어지고 광주역 근처 공판장까지 가던 도중 행방불명된 이래 44년째 실종자로 남은 당시 20살 효자 이재몽씨(현재 나이 64세).
5.18 실종자인 이재몽씨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5·18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탓에 중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이씨는 농사일을 돕는 효자였다.
담양군 대전면에서 부모와 함께 키운 마늘을 광주 공판장에 내다 팔기도 했는데, 1980년 5월 당시 담양에서 광주역으로 향하는 버스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농사꾼이었던 이씨 가족은 당시 세상물정에 어두워 80년 5월 당시 도청 소재지인 광주시에 계엄군이 들이 닥치고 통행을 제한해 버스도 통제된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버스가 오지 않자 할 수 없이 지게에 마늘을 한가득 짊어진 이씨는 할머니와 함께 두 발로 걷고 걸어 광주로 향했다.
그게 이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함께 마늘 팔러 갔던 재몽씨 할머니는 홀로 집으로 돌아와 "재몽이를 시퍼런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데리고 가 버렸다"는 말만 혼이 나간 표정으로 전했다.
가족들은 뒤늦게 그해 5월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했고, 이씨를 끌고 간 사람들이 계엄군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손자를 잃어버린 할머니는 "언제나 돌아오나" 하며 매일 집에서 이씨를 기다리며 애태우다 그만 얼마되지 않아 5년 후 별세했다.
가족들은 행방불명된 아들이 돌아오길 계속 기다렸지만, 당시 군인들은 병역 기피자로 의심해 재몽씨를 찾겠다며 수시로 집을 들쑤시는 등 난리통에 가족들은 할 수 없이 병역 회피자 의심을 피하려 1985년 재몽씨에 대한 사망신고를 했다.
이씨는 2009년에야 5·18 행방불명자로 인정 받았고, 국립 5·18민주묘지에 시신 없는 행방불명자 묘역에 안장됐다.
그의 묘비에는 평소 찍어놓은 사진이 없어 겨우 찾은 이씨의 어릴 적 사진이 새겨졌다.
광주지법 민사10단독 하종민 부장판사는 이씨의 유족 6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일부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이씨에 대한 위자료는 "헌법 질서 파괴 범죄 과정에서 반인권적 행위로 피해를 봤고, 40여 년 간 배상이 지연됐다"며 2억원으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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