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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상이면 소도 잡는다’…티메프 사태와 전세사기의 재해석 [홍길용의 화식열전]
납품·전세 등 오랜 외상거래 관행
고객돈 유용해 제 배 불리기 성행
손보·증권사도 유동성·비용에 도움

온라인쇼핑몰 적자에도 경영 유지
‘사이비’ 금융으로 부족한 자금 메워
제도 헛점…정부·정치권 대응 미봉

큐텐은 해외기업 ‘잃은 소’ 회수 난망
구영배 위법사항 모호, 중형 피할수
위험관리 소홀 PG사 ‘1차’ 책임질듯

해외에서 사업하는 L씨의 일화다. 사업 초기 한국 기업에 납품하려고 했는데 그 업체에서 외상을 요구해왔다. 일단 납품하고 그 대금은 그 다음 납품 때 치르는 조건이다. 첫 납품에는 선수금도 없었다. 계속 외상으로 납품하지 않으면 앞선 물품 대금을 받기 어려운 구조다. 제안을 거부한 L씨는 이후 한국 기업과 거래하지 않고 수출에만 주력한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갑(甲)’의 외상 거래는 한국에 뿌리 깊은 관행이다.

외상 거래는 금융거래다. 갚을 능력에 대한 판단이 거래 기준이다. 채권이나 어음과 같다. 신용에 따라 가격(이자율)과 기한(만기)가 정해진다.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는 온라인쇼핑몰이 외상으로 소를 삼킨 ‘사이비 금융 사건’이다. 사적 거래인 전세 제도를 악용한 전세 사기와도 닮았다. 주거비 외상 거래의 일종인 전세 역시 집값이 핵심인데 부풀려진 시세를 정부가 관리하는 감정평가와 시장의 금융시스템 모두 걸러내지 못했다.

더 이상 소를 잃지 않기 위해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고쳐서 쓸지 애매하다. 또 이미 잡아 먹힌 소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적자라도 돈은 많다…온라인쇼핑몰 경영 비결은 고객 돈으로 돌려막기

기업공개(IPO)로 대규모 자본을 조달한 쿠팡을 제외하면 지마켓 등 대부분 온라인쇼핑몰이 적자다. 매출원가와 관리비 합이 매출액 보다 많다. 물건을 밑지고 팔면 원가를 치르는데 모자란 돈을 빌려와 메우는 게 보통이다. 이자 부담이 크다. 그런데 온라인쇼핑몰은 적자인데 이자 비용이 유독 적다.

상장 전인 2021년 쿠팡은 유동자산이 3조7000억원, 유동부채 5조5000억원이었다. 당기순손실은 1조6000억원에 육박했고 누적결손금은 5조9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 해 금융비용은 유동부채의 2.4%인 1352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110억원 이상 적자가 난 지마켓의 유동부채(7328억원) 대비 금융비용(43억원)은 고작 0.58%다. 돌고 도는 결제대금으로 부족한 유동성을 충당하면 가능한 일이다. 상품권 발행을 활용한 대규모 자금 조달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자본잠식 상태에서도 상품권으로 대중에게 돈을 모을 수 있다. 일반 기업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사실 고객 돈으로 보이지 않는 이득을 챙기는 곳은 온라인쇼핑몰 뿐만이 아니다. 손해보험사도 매년 의무적으로 갱신하는 자동차보험료로 경영에 필요한 막대한 유동성을 무이자로 조달한다. 증권사도 고객예탁금 이용료에서 경영비용을 충당한다. 심지어 증권사는 금융감독원에 내는 감독분담금도 고객예탁금에서 충당한다. 외상거래 덕분에 송아지를 공짜로 얻는 셈이다. 다만 보험사와 증권사는 규제가 많고 감독 기준도 엄격한 편이다.

▶어설픈 제도 개선…아직 시행도 안돼

유통업인 온라인쇼핑몰이 전자상거래와 결합하면 사실상 금융업이 된다. 달리 말해 고객 돈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들의 전자상거래 사업 확장과 2021년 머지포인트 사태 이후 온라인 결제대금과 선불충전금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의 유관기관 인사권 힘겨루기, 여야 정쟁으로 제도 개선은 제때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2023년에야 전자금융법 개정이 이뤄지지만 시행은 내달 15일이다.

설령 새 전금법이 시행됐더라도 이번 사태엔 무용지물이다. 개정법에는 선불충전금 보호 조항만 신설됐다. 고객이 결제한 돈을 보호하는 장치는 없다. 전자금융업자에 대한 금융당국 조치권도 일반 금융회사보다 미약하다. 고친 외양간 안에서 외상으로 소를 잡아 먹어도 제 값을 받을 방법이 마땅하지 않는 꼴이다.

▶고객 돈 덕분에 버티는데…접근 금지 가능할까

다시 외양간을 어떻게 고칠 지도 문제다. 전자상거래 회계에서 운영자금과 판매대금을 분리하거나, 온라인플랫폼의 이용약관 신고제 도입 등의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도 결제대금예치(escro) 의무화, 정산주기 제한 등을 위해 전자상거래법, 전자금융거래법, 여신전문금융업법 등 관련법 개정 검토에 돌입했다. 고객 돈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당연한 해법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온라인쇼핑몰은 자금회전이 빠른 업종이다. 기간에 차이는 있지만 고객에게 물건 값을 받고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하는 정산 주기가 존재한다. 사실상 무이자 단기차입이다. 정부가 온라인쇼핑몰이 고객 돈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제한하면 앞으로는 필요한 단기 유동성을 무이자로 쓸 수 없다. 이미 적자인 경영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중국이나 미국 등 해외업체와의 경쟁은 더 어려워지게 된다. 혁신 없이 외상으로 소 먹는 재미로만 온라인쇼핑몰 사업을 벌였던 이들을 대규모로 정리하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가능할 듯 하다.

▶ 전세사기 시즌2…소도 못 찾고, 도둑도 못 잡을 수

심지어 소 도둑을 엄벌하기도, 이미 잃은 소를 찾기도 어려워 보인다. 제도 허점에서 비롯됐지만 피해자 구제도 사기범 처벌도 어렵다는 점 역시 전세 사기와 닮았다.

검찰이 티메프가 속한 큐텐그룹 구영배 대표에 대해 수사에 들어갔다. 사기와 횡령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기망’ 행위, 즉 속임수가 있어야 한다. 고의로 상품 판매를 중개하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어야 한다. 불가피하게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다면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

횡령죄가 마찬가지다. 먼저 고객 돈을 회사 측이 임의로 사용하는 행위 자체는 현행법에서 금지되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들어난 치명적인 법의 허점이다. 자금의 사용처가 불법적인 곳이 아니라면 횡령이 아닌 채무불이행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기죄와 업무상 횡령죄 처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1500만원의 벌금이다.

티메프 경영진들은 문제 해결과 수사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의가 아니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논리를 펼칠 듯하다. 이들의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이면 중형을 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일부터 티메프 결제 취소와 환불 절차가 시작됐다. 카드사가 환불 신청을 받아 전자지급결제대행업자(PG)와 티메프에 내용을 확인한 후 취소 대금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카드사는 PG사에서서 대금을 받고 PG사는 다시 티메프에서 해당 금액을 회수하는 구조다. 거래상대방인 티메프에 대한 위험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을 지는 모양새가 됐다.

이번 사태의 피해 규모는 조 단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스닥 상장으로 대박을 노렸던 큐텐은 해외에 설립된 회사다. 티메프에서 유출된 고객 돈이 해외로 흘러갔다면 회수가 쉽지 않다. 티메프에서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금융시스템의 일부인 PG사들이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지난 20여년간 신용카드 사용이 비약적으로 늘며 PG업계는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왔다. 자본(연결기준)이 상장사인 KG이니시스와 NHN KCP는 3월말 기준 각각 6800억원 2300억원에 달한다. 비상장인 NICE페이먼츠와 토스페이먼츠도 지난해 말 기준 1330억원, 1700억원 규모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피해액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다. 가장 큰 KG이니시스도 충당금은 800억원 정도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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