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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집 지어 집값을 잡으려면

‘라떼’ 시절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면 적잖은 긴장감이 돌곤 했다. 오전에 배포된 대책을 해석하고, 이를 빠르게 기사로 작성해 전달해야 하는 압박감 때문 만은 아니었다. 대책이 발표된 당일부터 곧바로 시장에 반응이 나타나다 보니 대책의 파장을 예측하는 데 상당한 내공을 요했었다.

갑자기 철지난 얘기를 꺼낸건 지난 8일 발표된 공급 대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이날 대책은 총 25페이지에 달하는 보도자료가 배포됐고, 세부 추진 과제 만도 6개 단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이었다. 정비사업과 그린벨트 해제, 미분양 해소책,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 등 다방면의 대책들이 두루 담겼다. 그럼에도 대책을 접한 첫 느낌에서 솔직히 긴장감이 자리잡을 곳은 없었다. 언론은 기존의 관성대로 ‘8·8 공급대책’ 이라 보도했지만, 정확하게는 청사진이었다. 앞으로 그린벨트를 풀어 8만 가구를 공급할 것이며, 재개발·재건축 또한 촉진법을 제정해 속도를 당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선언문이었다.

야박하게 선언문이라 칭한 데는 대책이 시장에 영향을 주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어서다. 뇌피셜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시장은 이를 몸소 경험했다. 지난 1월 시장 참여자들은 ‘30년 노후아파트 재건축 안전진단 폐지’의 헤드라인을 생생히 기억한다. 이후 법안 처리 과정을 주시하지 못한 이들은 심지어 재건축 안전진단이 아예 폐지된 걸로 인지할 정도다. 하지만 안전진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제도 시행을 위해 선행돼야 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은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다 폐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재건축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안을 새롭게 제정해 정비사업의 기간을 추가로 3년, 총 6년이나 당기겠다고 하니 시장이 의구심을 갖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더구나 22대 국회는 법안 통과와 거부권의 무한 악순환에 갖힌 최악의 의회다. 방대한 백화점식 대책이 발표됐음에도 시장에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대책의 실질적인 효과를 걱정하는 이유다.

덧붙여 아쉬운 대목은 이번 대책이 철저히 서울과 수도권 만을 겨냥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수도권에 6년 간 42만7000가구의 우량 주택을 공급하겠다 했다. 주택 공급 확대 방안 제목 앞에 수도권이 괄호로 생략돼 있는 느낌이다. 저출생과 이로 인한 지방소멸이 현실화 하는 시점이다. 이를 우려하는 지방 소유자들은 이미 자산을 서울과 수도권으로 서둘러 이전하고 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만 오르는 집값 강세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다. 지방의 주택 수요를 진작하는 파격책이 담겼으면 어땠을까. 이런 극심한 집값 양극화는 결국 촉진법 개정시 야당을 설득하는 데 필시 큰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하다.

1월과 8월 두 번의 대책 메시지는 선명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진척은 없었다. 시장에선 이러다 ‘정책 무용론’이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불안한 집값에 관계부처합동으로 발표된 이번 대책에 세제와 금융 등 수요 억제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과연 시장에 주려한 소기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불안한 심리를 잠재우려 했던 것일까. 정부는 성실히 정책적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정순식 건설부동산부장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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