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2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현재 3.50%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지난해 2월 3.5%로 묶은 이후 13번째다. 불어나는 가계빚과 뛰는 집값을 고려한 조치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9월 금리 인하가 기정사실화한 마당에 한은의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한은은 이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내놨는데 2.5%에서 2.4%로 하향 조정했다.
앞서 7월 동결 직후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제는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을 준비할 상황”이라고 밝혔는데 시장 상황은 더 나빠졌다. 집값이 뛰고 불안 심리에 구매 수요가 늘어 대출이 폭증했다. 은행이 주담대 금리를 올려도 소용이 없다. 7월 서울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6월보다 0.76% 올라 4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였다. 5대은행 가계대출도 이달 들어 보름 사이 4조1795억원이 더 불어났다. 금리를 섣불리 인하했다간 집값 상승을 부추길 우려가 큰 상황이다.
문제는 고금리·고물가 장기화로 내수와 제조업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분기 전국 소매 판매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9%나 줄었다. 내수 부진과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으로 기업활동도 위축되고 있다. 기업업황에 대한 심리 판단을 보여주는 8월 중 전산업 기업심리지수(CBSI)는 92.5로 전월에 비해 2.6포인트 하락해 2개월째 내림세다. 100보다 작으면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제조업 CBSI는 92.8로 전월보다 2.9포인트 하락해 2개월 연속 내림세고, 비제조업은 2.4포인트 내린 92.2로 한달 만에 하락 전환했다. 채산성,매출 모두 떨어졌다. 제조업· 비제조업 가릴 것 없이 모두 경기가 나쁘다는 얘기다. 과감한 선제적 금리 인하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은이 결단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늦지 않게 정책전환에 나서려면 무엇보다 집값 안정과 부채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적어도 한 두달 안에는 긍정적 신호가 나와야 한다. 미국의 9월 금리인하 현실화도 한은의 시간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21일(현지시간) 공개된 7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대다수 위원들이 경제지표가 예상대로 흘러갈 경우 9월 기준금리 인하가 적절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금리를 0.5% 내리는 ‘빅컷’ 시나리오도 나오는 상태다. 미국은 지난 7월 고용 지표가 시장 전망치를 하회하며 인하 시점을 놓쳤다는 비난이 거세게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소비가 견고한 것으로 드러나 시장이 안심했지만 화들짝 놀란 연준이 어떤 스텝을 밟을지 관심사다. 수치로 확실히 드러난 경우엔 이미 늦은 때일 수도 있다는 점을 한은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