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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과 더 밀착” 신냉전시대 한국의 생존법
韓, 지난 20년간 中 호황 이용 ‘윈-윈’
“향후 생존 위해선 러·中과 거리 벌리고
‘美만 선택’이 韓경제·안보에 최선” 강조
로빈 니블렛의 신냉전/로빈 니블렛 지음 조민호 옮김/매경출판

수컷 바다코끼리 두 마리가 해변에서 서로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힘싸움을 벌인다. 그들이 육중한 몸뚱이를 부딪치며 포효하면, 체구가 작은 암컷과 새끼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태어나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어린 새끼도 엉거주춤 피난행렬을 따라나섰지만 놈의 여물지 않은 지느러미는 너무 느렸다. 300㎏이 넘는 수컷의 뒷걸음질에 그대로 짓눌린 새끼는 입에서 흰 액체를 콸콸 쏟아내면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자연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 바다코끼리의 힘 겨루기가 마치 현재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다툼과 닮아있어서다. 국제 정치외교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이자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을 역임한 로빈 니블렛은 ‘신냉전’을 통해 양국이 벌이는 힘의 논리를 동물의 세계에 빗대 담담하게 그려냈다. 양국의 틈바구니 안에서 한국·일본·호주·유럽은 각각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도 제시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무미건조한 격언은 자연계는 물론 국제관계에서도 통한다. 저자는 ‘새우’ 격이라 할 만한 한국에 대해 “자국 보호를 위해서라도 미국에 더 의존해야 할, 적어도 더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국면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 일본, 호주 등 미국의 태평양 동맹인 세 나라는 지난 20년간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윈-윈의 기회로 삼아왔지만 최근 중국과 관계가 갈수록 경색되고 있다”며 “강대해진 이웃 국가와 경제적 이익을 계속 모색하는 전략과 안보 강화를 위해 미국과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전략 사이에서 결국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일갈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러시아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중국에 대해서는 더 견고한 울타리를 둘러야 한다”고도 제언한다. 그래야 미국이 해당 지역의 안보를 보장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논리다.

저자의 말처럼 현 세계 정세가 엄혹한 것은 사실이다. 전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로 대변되는 ‘깊은 문화적 분열’이 미국 국내 정치를 괴롭히자 미국의 국제 정세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었다. 이처럼 ‘세계의 경찰’을 자처했던 미국의 리더십이 약해진 사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중국은 러시아의 손을 잡았다. 미국의 대서양 동맹인 유럽과 태평양 동맹인 한국·일본·호주는 일거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저자는 21세기 신냉전 시기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은 1970년대 냉전 시기의 소련,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와도 다른, 제대로 된 적수라고 강조한다.

중국은 지정학적 안정과 경제적 개방으로 21세기 가장 큰 이득을 본 국가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비대칭 전력, 즉 상대국에 없는 대체무기로 미국의 군사력을 무력화시킬 역량을 이미 구축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자국을 포위하듯 군대를 배치한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전략에 강한 불만을 제기한다. 미국이 태평양지역의 섬을 사슬처럼 이은 가상의 경계선(오키나와를 포함한 류큐 열도를 시작으로 대만과 필리핀 북부 작은 섬들을 지나 인도네시아 북쪽, 말레이시아 서쪽을 휘감아 베트남 인근 해역까지 이어지는 지역)은 중국의 신경을 심하게 거스른다.

아울러 중국과 러시아의 동반자 관계는 단순히 시류에 편승한 이합집산이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두 나라는 과거 미국, 유럽, 일본 등에 무릎 꿇은 역사적 굴욕을 ‘분노로 승화한 민족주의와 보복주의’란 이데올로기를 연결고리로 동맹을 맺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중국의 ‘대만 침공설’에 대한 근거에 대한 의견도 말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권위주의 독재자는 내부 불안을 외부로 표출한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향후 몇 년 내라도 중국 경제상황이 악화하거나 정치적 통제력을 잃어간다고 느낀다면 자신과 당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대만 흡수를 가속하고자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국 공산당은 대만에 대해 그들이 말하는 ‘더 위대한 중국’으로 재흡수할 대상으로 본다”며 “대만(침공)이 일종의 국내 신뢰도와 정당성에 대한 시험대인 셈”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마지막 장(章)을 신냉전 시대의 생존 규칙에 할애했다. 그의 해법은 총 다섯 가지다. 신냉전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저자의 말에 위기감이 감돈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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