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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 결혼하니” 추석 잔소리도 예술?…‘2300억대’ 역대급 그림 뒷이야기 [0.1초 그 사이]
⑮ 폴 고갱

[0.1초 그 사이]는 역대급 몸값을 자랑하는 작품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한 작품이 명성을 얻게 되는 데는 작품성을 넘어선 그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안목이 뛰어난 컬렉터나 큐레이터의 손을 거치는 것은 물론 스캔들, 법적 분쟁, 도난 사건, 심지어 예술계를 뒤흔든 저항까지…. 작품의 명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이처럼 다양합니다.

그리고 평판 높은 이런 미술품들은 단 0.1초 차이로 행방이 갈라지게 되죠. ‘찰나의 순간’으로 승부가 나뉘는 치열한 미술시장에서 선택받은 그림들, 그 안에 얽힌 속사정을 들려드립니다.

고갱의 작품 중 역대급으로 비싼 가격에 거래된 ‘언제 결혼하니?’(1892). 중동 카타르 왕가의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가 지난 2015년 이 작품을 약 3200억원에 개인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 알려진 가격보다 30% 저렴하게 구입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약 2300억원에 작품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절대적인 천재.”(파블로 피카소) vs “늘 외국 땅을 침입하는 식민지 예술.”(카미유 피사로)

동시대를 살아간 동료 작가들 사이에서 평이 극단적으로 갈렸던 이 화가. 그런데 123년이 지난 뒤 그가 남긴 작품 한 점은 세계 미술품 거래를 통틀어 ‘역대 최고가 그림’으로 등극합니다. 약 2300억원에 팔렸거든요. 그림의 제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 결혼하니?’(1892)입니다.

다가오는 추석 밥상에서 자제해야 하는 단골 스트레스성 질문이 작품명이라니…. 이는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따라다니는 잔소리인 걸까요. 이 작품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으로 4위를 차지하고도 있는데요. 도대체 이 그림의 무엇이 특별하길래 이렇게나 높은 값을 자랑하게 됐을까요.

작품을 그린 화가는 남태평양 타히티 섬에서 살아가는 원주민의 삶을 동경했던 프랑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1848~1903)입니다. 그는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에드바르트 뭉크 등 20세기 거장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후기 인상파 화가로 꼽히는데요. 지금부터 그의 가장 비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화가가 내 길”이라는 서른다섯 회사원
폴 고갱이 그린 자화상(1889). [미국 워싱턴DC 내셔널갤러리]

서른다섯. 끝내 직장을 때려치운 고갱이 전업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때입니다. 여느 누구보다도 늦게 시작한 도전이었죠. 더 놀라운 건 고갱은 정규적인 미술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20대에만 해도 그는 평범한 증권 중개인으로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결혼도 했고 미술품을 수집하기도 했죠. 그런데 프랑스 주식 시장이 붕괴되면서 끝내 실직하게 되자 고갱은 다소 느닷없이 이렇게 밝힙니다. “나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태어났고, 이제야 내 길을 찾았다.”

뒤늦게서야 그림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고갱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을 철저하게 믿었던 것만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두가 뜯어말리는 ‘늦깎이 화가’라니요. 그는 예술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화가로 이름을 날리고 싶었던 세속적 욕망에 온몸을 던진 것이기도 하고요. (현실은 그의 바람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요.) 당시 그는 인상파 화가들과 자주 어울렸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와는 무척이나 각별한 관계였고요. 프랑스 남쪽 끝 아를에서 고독하게 그림을 그리는 고흐의 초대에 그의 작업실까지 달려간 이가 바로 고갱이었습니다.

고갱과 고흐 사이를 알 수 있는 지난 기사 “제기랄, 온통 노랑이야!” 경멸할 땐 언제고…208만배 몸값 ‘들썩’ [0.1초 그 사이]

서구 화가 눈에 비친 ‘원시세계’ 타히티의 신비
40대의 고갱. 고흐가 생을 마감하고 이듬해 모습이다.

고갱은 고흐가 우울증에 시달리다 비극적으로 유명을 달리하고도 거의 13년을 더 살았습니다. 평단에서 고흐를 둘러싼 신화가 만들어지면서 그의 작품이 고갱의 능력을 능가하는 그 무언가로 간주되던 시기를 겪어야 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존심이 상당히 센 고갱이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노력을 해야만 했던 거죠.

이러한 상황은 그가 서양 문명에 찌들지 않은 남태평양의 원시 세계로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배경이 됩니다. 무일푼이었던 고갱은 그림을 경매에 부쳐 경비를 마련했고요. 언론과 잡지에 자신의 타히티행을 대대적으로 알렸습니다. 부양해야 할 자식이 다섯이나 있는 가장이었지만 그는 배에 올라탔습니다. 그렇게 69일 만에 타히티에 도착한 고갱의 나이는 마흔넷이었죠.

고갱이 타히티 섬에 도착해서 그린 원주민 여성들 ‘이아 오라나 마리아(아베 마리아)’(1891).

그는 타히티에서도 문명의 흔적이 거의 없는 미지의 마을 마타이에아로 한차례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이곳 오두막에서 몇 달 동안 몰두해 그린 그림(1892년 말부터 1893년 초까지로, ‘나 고갱 좀 안다’ 하려면 꼭 기억해야 하는 작품 제작 연도입니다.)이 뒤늦게서야 빛을 보게 된 고갱의 전성기 작품으로 꼽힙니다. 이 시기 고갱은 원시 토착인들로부터 영감을 얻으면서 새롭고 획기적인 자신만의 화법을 시도했거든요.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원시주의에 대한 그만의 강한 취향이 드러납니다. 서구 미술에서 벗어난 생동감 넘치는 열대지방의 색채, 전통적인 원근법에서 탈피한 평면적 구성, 원주민들의 신화와 전통을 나타내는 여러 상징들, 자연과 인간의 본능적인 연결…. 고갱의 작품을 말할 때마다 거론되는 중요한 요소인데요. 고갱은 이러한 것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색채를 탐구하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구분될 수 있는 자신만의 강점이라고 판단한 것만 같습니다. 신비스러운 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타히티에서 그는 상상력을 더해 캔버스를 채워나갔죠.

“나는 인상주의가 아닌 원시주의이며, 내가 그리고 있는 것은 근본적인 진리다.”

본국에 가족 놔두고…13살 소녀와 결혼한 고갱
고갱의 뮤즈였던 타히티 원주민 여성 테하마나. ‘망고를 든 여인’(1892). [발티모어 아트미술관]
고갱의 뮤즈였던 타히티 원주민 여성 테하마나. ‘테하마나의 조상들’(1893).

그런데 무엇보다 고갱의 강렬한 뮤즈였던 테하마나를 빼놓고서 이 시기 작품을 온전히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고갱은 미술사에 획을 그은 거장이지만, 나쁜 남자이기도 하거든요. 고갱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때 묻지 않은 원주민 여인들의 누드를 여러 점 그렸는데요. 그들 중에서도 예쁘고 말 없고 순수한 열세 살의 테하마나는 그에게 영감을 주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었습니다. 고갱은 테하마나와 결혼을 해 버립니다. 31살이나 어린 나이의 앳된 소녀라는 점은 그에게 별문제가 되지 않았나 봅니다. 본국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지만 고갱은 이조차도 개의치 않았고요.

그렇게 그의 영감이 원천이 된 테하마나는 고갱의 최고 거래가 작품인 ‘언제 결혼하니?’(1892)를 포함해 ‘망고를 든 여인’(1892), ‘마나오 투파파우’(1892), ‘테하마나의 조상들’(1893) 등 그의 주요 회화마다 등장합니다. 화폭 속 테하마나는 평온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요. 그런 그의 존재가 고갱의 이름값을 높여줬거든요. 고갱은 만족스러운 작품을 완성하는 족족 프랑스에 있는 화랑으로 보냈죠.

테하마나를 부르는 고갱의 시선을 좀 더 알 수 있는 단서가 애칭입니다. 그는 테하마나를 ‘테후’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타히티어로 여성의 이름에 붙이는 일반적인 접미사입니다. 이름 대신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에 맞춰 재구성한 타히티어로 테하마나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건데요. 아니나 다를까. 고갱의 그림 속 테하마나는 신화나 전설에서나 존재할 법한 절대적이고 완전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달리 말하면 테하마나가 가진 정체성이나 복잡한 내면의 감정은 간과됐다는 의미입니다. 서구 화단에서 인정받기 위한 고갱의 ‘미학적 희생양’이 테하마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고갱이 걸작으로 자평하는 작품 ‘마나오 투파파우’(1892)으로 화폭 속 여성이 테하마나다.
뒤편으로 보이는 이 인물이 타히티 원주민이 저승사자라고 부르는 투파파우. 그런데 유럽의 마녀처럼 묘사됐다.

작품을 좀 더 찬찬히 살펴볼까요. 고갱이 스스로 걸작으로 꼽은 작품이 바로 ‘마나오 투파파우’입니다.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1863)를 떠올리게 하는 구성인데요. 그림 속 누드의 테하마나는 조상들이 믿었던 저승사자인 투파파우를 보고 겁에 질려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검은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는 인물이 투파파우인데요. 짐승의 형상을 한 타히티 전설 속 모습과 달리 투파파우가 유럽의 마녀처럼 묘사됐습니다. 지극히 서구적으로 본 고갱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또 다른 작품을 살펴볼까요. ‘언제 결혼하니?’는 고갱이 타히티에서 만난 두 명의 여성 인물을 그린 그림입니다. 타히티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여성, 바로 테하마나입니다. 다른 한 명은 서구식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 그림은 단순한 초상화를 넘어 당시 타히티 사회의 변화를 상징하는 그림입니다.

고갱의 최고 거래가 작품인 ‘언제 결혼하니?’(1892).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이 테하마나다.

당초 고갱은 타히티를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천국’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실상은 달랐죠. 막상 타히티에 도착해 보니 타히티도 프랑스 식민지화에 따른 영향으로 이미 문명화를 겪고 있었던 건데요. 고갱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결국 그가 타히티에서 더 깊숙한 원시의 공간인 마타이에아로 향하게 된 까닭이기도 하고요.

그림 속 대비되는 두 여인의 모습은 이러한 문화적 교차를 잘 보여줍니다. 테하마나는 타히티의 순수함과 자연을 상징하고요. 유럽풍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서구화된 타히티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결혼하니?’라는 작품명은 타자화된 고갱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그대로 반영된 건데요. (타히티 여성과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낸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그는 이미 테하마나와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변질된 ‘이상’
중동 카타르 왕가의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 [연합]

이 작품은 스위스 수집가 루돌프 슈테린 가문이 개인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약 50년간 이 그림을 스위스에 있는 바젤 시립 미술관에 대여해 줬고요. 그러나 슈테린 가문은 재정적인 이유로 이 작품을 판매하기로 했고, 당시 이런 결정은 세간의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공공 미술관에서 오랜 기간 전시된 그림이기 때문에 사실상 ‘공공 소유’처럼 여겨진 작품이었거든요. 타히티 원주민의 원초적인 문화를 아름답게 담아낸 그림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투자 자산으로 변모해버린 겁니다. 아이러니한 현실이죠.

거액에 작품을 손에 넣은 새 주인은 다름 아닌 중동 카타르 왕가의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였습니다. 그는 최근 10여년간 비싼 미술품 경매에서 이름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큰손’이기도 한데요. 그가 2015년 구매한 뒤로 이 작품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고갱이 타히티 원주민 여성을 서구적 시선으로 타자화했던 것처럼, 이제 이 작품은 그 자체로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또 다른 형태의 대상화가 이뤄졌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거대한 자본의 힘에 의해 관리되고 보유되는 새로운 형태의 권력, 그 자체를 의미하는 작품으로 전락한 것이죠.

그림 속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테하마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의 얼굴이 슬퍼 보이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닌 듯합니다. 긴 연휴를 앞둔 오늘입니다. 안부를 빙자한 잔소리에 테하마나처럼 끝내 입 닫는 이들이 없길 바랍니다. 누구도 타자화되지 않고 대화의 주체로 설 수 있는 풍성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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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Gauguin’s Tahitian lover may be more fantasy than reality, Martin Bailey, The Art Newspaper.

‘World’s Most Expensive Painting’ Actually Sold for $90 Million Less Than Reported: Suit, Eileen Kinsella, Artnet.

고흐와 고갱, 김광우 지음, 미술문화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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