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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본성·상실과 고통...삶의 근본적 물음 정면으로 직시 [한강,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걸어온 길과 작품세계
1994년 신춘문예 당선되며 등단
채식주의자 등 40개국에 번역출간
인간의 폭력성·상처 집요하게 탐구

‘아시아 여성 최초’, ‘한국인 최초’ 노벨 문학상. ‘국내 역대 두 번째’ 노벨상. 12년 만의 아시아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전세계 18번째 여성 작가의 노벨 문학상....

어떤 화려한 수식어를 붙여도 과하지 않다. 그만큼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수 겹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30년 간 벼려온 그의 작품 세계가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한강 작가는 무엇보다 죽음과 폭력 등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시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내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별하지 않는다’ 등으로 한국 현대사의 깊은 어둠과 상처를 소설로 형상화했다.

2007년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는 한강이란 이름이 국내 대중은 물론 세계 문학계에 널리 알린 시발점이 됐다. 육식을 거부하며 가족들과 갈등을 빚기 시작하는 주인공 영혜를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다. 영혜가 가부장제의 폭력과 이에 대항하는 차원으로 처음엔 육식을 거부하다 종국엔 식음을 전폐하며 벌어지는 폭력적인 결과를 그려냈다.

‘채식주의자’는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으로 해외 시장에 출간됐고, 2016년 한국 작가로선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이 됐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당시 “불안하고 난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라며 “현대 한국에 관한 소설이자 수치와 욕망,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갇힌 한 육체가 다른 갇힌 육체를 이해하려는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들에 관한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이 된 ‘소년이 온다’도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등단 이래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상처와 사랑, 삶의 비극에 천착해 온 그의 작품 세계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2014년 출간한 장편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도청 상무관을 주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15세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는 동호의 친구 정대, 동생 뒷바라지를 하다 행방불명된 정대 누나 정미 등 당시 광주에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 그들의 아픔을 함께 어루만진다. 작가는 고증과 취재를 통해 소설을 집필했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10살이 되던 해 1980년에 광주 민주화운동이 벌어지기 불과 몇 달 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이후 아버지와 친척들로부터 광주의 당시 상황에 대해 듣고 학살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을 접하며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다. 그는 이에 대해 “어떤 정치적 각성이라기보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순간이자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없이 깨어졌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사건에서 출발한 2021년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그의 작품세계의 정수다. 오래지 않은 비극적 역사의 기억으로부터 길어올린, 그럼에도 인간을 끝내 인간이게 하는 간절하고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가 선연한 이미지와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에 실렸다.

소설은 경하와 인선, 인선의 어머니 정심 세 여성의 시선으로 제주 4·3의 비극을 풀어낸다.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의 서사는 공간적으로는 제주에서 경산에 이르고, 시간적으로는 반세기를 넘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 2023년 프랑스에서 ‘불가능한 작별’이란 제목으로 출간됐고, 그해 프랑스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한강은 지난해 11월 메디치상 수상을 기념한 간담회에서 “이 책은 인간성의 아래로 내려가서 그 아래에서 촛불을 밝히는 이야기”라며 “그렇게 애도를 끝내지 않는, 결코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런 마음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작가가 소재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며 “‘5월 광주’에 이어 ‘제주 4·3’에도 한강의 문장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영역이 있었다고 믿게 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한계까지 밀어붙였기 때문일까.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면서 너무나 추웠기 때문에 이제 봄으로 들어가고 싶다”며 앞으로 나올 작품에서의 변화를 암시했다.

30년 전 그의 첫 장편소설인 ‘검은 사슴’(1995) 역시 소멸과 허무, 슬픔으로 충만한 작품이다. 온 감각을 동원해 존재의 심연에 자리한 고통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검은 사슴’은 평생의 소원인 하늘을 보기 위해 광부에게 뿔과 이빨까지 뺏기지만, 간절하게 햇빛을 원할수록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굴러떨어진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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