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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페라 전쟁의 서막…55만원 짜리 대작 오페라 ‘투란도트’ K-팝 성지 입성 [10월 오페라 대전]
티켓값 55만원 대작 ‘투란도트’
요나 김과 국립오페라단 ‘탄호이저’
노들섬에서 만나는 존노의 ‘카르멘’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의 ‘투란도트’ [솔오페라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금 서울은 ‘오페라 전쟁’의 막이 올랐다. 지난 400여년간 세대와 국적을 초월해 사랑받은 장르가 2024년 10월 서울에서 ‘티켓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1만여 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K-팝 성지 케이스포 돔(KSPO돔)부터 노들섬까지…. 올 가을은 모두 오페라 공연이 차지했다. 쟁쟁한 프로덕션과 세계적인 연출가, 스타 성악가들이 총출동한 만큼 10월 한 달은 오페라와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하다.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의 ‘투란도트’ [솔오페라단 제공]
‘푸치니의 나라’에서 왔다…K-팝 성지 입성한 ‘투란도트’

선공은 이탈리아 본토에서 시작됐다. 회당 평균 1만 명, 가왕 조용필부터 K-팝 퀸 아이유에 이르기까지 K-팝 스타들의 공연 성지로 불리는 서울 송파구 케이스포돔에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의 ‘투란도트’가 입성했다. 지난 12일 시작한 공연은 오는 19일까지 장장 8일간 이어진다.

이 오페라가 케이스포돔으로 향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작곡가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맞아 베로나의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에서 ‘아이다’를 올리며 시작된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의 오페라를 고스란히 서울 무대로 옮겨오면서다. 케이스포돔은 아레나는 아니지만, 베로나 오페라의 웅장한 화려함을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인 공연장이다.

한국을 찾은 아레나 디 베로나의 ‘투란도트’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오페라 연출가인 고(故) 프랑코 제피렐리가 연출과 무대 디자인을 맡은 버전이다. 연출은 스테파노 트레스피디, 음악감독은 다니엘 오렌이 맡았다. 한국에선 유서깊은 명작 버전을 고스란히 재연한다.

푸치니 서거 100주년, 한국과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한 공연인 만큼 제작진 역시 각오가 남다르다. 트레스피디는 “이번 공연이 한국 오페라 역사에 정점을 찍는 공연이 될 것”이라며 “한국 관객들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공연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무대 너비 46m, 높이 18m에 달하는 무대의 위용에 화려한 의상과 스펙터클한 연출, 공중에 설치한 마이크를 통한 풍성한 사운드와 섬세한 울림으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오페라를 보게 될 전망이다.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의 ‘투란도트’ [솔오페라단 제공]

푸치니의 이 작품은 공주 투란도트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투란도트의 수수계끼를 풀어 사랑을 얻으려는 왕자 칼라프의 이야기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선 3막에 등장하는 ‘아무도 잠들지 말라(네슌 도르마)’처럼 전 세계를 사로잡는 아리아가 등장하는 만큼 ‘오페라 문외한’도 재밌게 볼 수 있다.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다 보니 티켓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이 공연의 최고가는 55만원. 그럼에도 전 연령대에서 고른 티켓 예매 분포도를 보이고 있다. 티켓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토란도트 예매 관객은 20대 19.1%, 30대 24.2%, 40대 23.2%, 50대 21% 등 다양한 구매 분포를 보였다. 현재 클래식 오페라 예매 부문 1위다. 투란도트 역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올가 마슬로바·옥사나 디카·전여진이 캐스팅됐다. 테너 마틴 뮐레와 아르투로 차콘 크루즈는 칼라프 왕자 역을 맡는다.

‘투란도트’는 두 달 뒤인 12월 22~31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다른 프로덕션의 작품으로 또 한 번 무대에 오른다. 2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이 오페라는 티켓 최고가 100만원에 달하는 대작이다. 엄청난 스케일로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열리는 두 오페라는 사실 소프라노 마리아 굴레그히나, 지휘자 다니엘 오렌 섭외를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결국 소프라노의 출연은 양측 다 무산됐고, 오렌은 아레나 디 베로나의 ‘투란도트’에만 출연한다.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요나김 [국립오페라단 제공]
요나 김의 두 번째 한국 오페라 ‘탄호이저’ 서울 버전

독일에서 활동 중인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요나 김과 국립오페라단이 바그너로 만났다. 요나 김 연출가에겐 무려 9번째 바그너 작품이자, 국립오페라단으로선 45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인 ‘탄호이저’(10월 17~20일·예술의전당)를 통해서다.

이번 작품은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시리즈’의 신호탄이다. ‘탄호이저’를 시작으로 2025년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무대는 이어진다. 오페라 세계에서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로 꼽히는 군단을 모두 섭외했다. 독일 최고 권위 예술상인 파우스트상에 두 번(2010, 2020) 노미네이트 되며 유럽 오페라계를 이끄는 한국인 여성 연출가 요나 김(독일 만하임 극장 상임 연출가)을 필두로 했다. 지휘는 필립 오갱이 맡았다.

‘탄호이저’는 금욕과 쾌락 사이의 갈등, 예술가의 고뇌를 담은 작품으로 러닝타임만 해도 인터미션을 포함해 4시간이 넘는다. 숏폼 시대에 관객의 집중력을 잡아두기엔 난관이 많은 작품이다.

요나 김과 국립오페라단 ‘탄호이저’ [국립오페라단 제공]

요나 김은 “‘탄호이저’는 청년 바그너의 변곡점이 된 작품”이라며 “여성에 대한 바그너의 클리셰 작법을 깨부수기 위해 그 안에 숨은 가사와 음악을 하나하나 해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능적 팜므파탈인 베누스와 숭고한 성녀로 비춰지는 엘리자베트는 한 여성의 양면성을 은유한 것으로, 이들이 서로 바라보는 장면을 추가해 관객에게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바그너는 수 십년에 거쳐 이 작품의 수정본을 만들었다. 1845년 드레스덴, 1861년 파리 버전, 1867년 뮌헨 버전, 1875년 빈 버전 등 버전이 네 가지나 존재한다. 이번 작품에선 1막엔 파리 버전, 2, 3막은 드레스덴 버전을 사용했다. 요나 김은 “지휘자와 상의해 젊은 시절의 바그너 분위기를 내기 위해 드레스덴과 파리 버전을 절충했다”며 “이번 ‘탄호이저’는 서울 버전”이라고 했다.

지휘를 맡은 필립 오갱은 “바그너 오페라는 마라톤과 같다”며 “긴 공연시간에도 재단사가 된 듯 음표 하나, 텍스트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특히 탄호이저라는 인물에 집중해서 지휘할 예정”이라며 귀띔했다. 탄호이저 역에는 바그너 스페셜리스트인 독일 출신 테너 하이코 뵈르너와 다니엘 프랑크가 함께 한다. 엘리자베트는 레나 쿠츠너와 문수진, 베누스는 쥘리 로바르-장드르, 양송미가 이름을 올렸다.

존노의 첫 한국 오페라 도전작…노들섬의 ‘카르멘’

‘팬텀싱어’ 시즌3 출신인 테너 존노(크로스오버 그룹 라비던스)의 국내 첫 전막 오페라 도전작은 ‘카르멘’이다.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한강 노들섬 오페라 ‘카르멘’(10월 19~20일·한강 노들섬)에서 그는 평소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돈 호세로서 관객들 앞에 설 예정이다. 존노와 호흡을 맞출 카르멘 역할은 메조 소프라노 정주연이 맡았다.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집시 카르멘과 군인 돈 호세의 ‘전쟁 같은 사랑’과 배신, 복수와 죽음을 다룬다. ‘투우사의 노래’와 ‘하바네라’와 같은 굵직한 아리아가 불멸의 히트곡으로 남아있는 명작이다. 서울문화재단이 ‘카르멘’을 선택한 것도 오페라 애호가보다는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이 많이 찾는 야외 오페라의 특성 때문이다.

‘카르멘’의 연출을 맡은 김숙영, 돈 호세 역의 존노, 카르멘 역의 정주연 [서울문화재단 제공]

오페라는 인터미션 없이 180분 짜리 원작을 100분으로 축약해 무대에 올린다. 연출을 맡은 김숙영은 “야외 오페라의 특성상 3시간을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오페라는 종종 지나치게 설명적인 데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고 감각적이라고 느낄 만큼 유연하게 끊었다”고 설명했다.

‘카르멘’은 시대에 따라 달리 읽히는 오페라다. 돈 호세가 카르멘을 죽이며 끝나는 비극적인 결말 탓에 페미니즘과 미투, 데이트 폭력이 화두가 된 요즘은 전 세계 곳곳에서 ‘카르멘’을 재해석해 무대에 올리고 있다. 2018년 1월 이탈리아 피렌체 마지오 피오렌티노 극장에서 막을 올린 레오 무스카토 연출가의 ‘카르멘’이 대표적이다. 원작과 달리 이 작품에선 자신을 죽이려는 호세의 총을 빼앗아 그를 죽이며 끝을 맺는다.

김숙영 연출가는 “성악가들에게 각자의 캐릭터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카르멘’의 이야기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선 문제 의식을 던져주는 방식으로 연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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