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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준 KAIST 교수 “서구가 지배한적 없는 미디어아트…한국이 주도할 수 있어” [인터뷰]
미디어 너머 조작된 신화 존재 있어
세상 바르게 인식하려면 깨어있어야
시스템 운영하는 자본의 방향 알 필요
이진준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기술로 세상은 좋아졌는데, ‘좋은 세상’은 아직 아닌 것 같아요.”

이진준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최근 서울 동대문구 홍릉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헤럴드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점점 더 ‘슬픈 세상’이 되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구 사회에서는 과학이 인류를 진보시킨다는 믿음이 이미 1940년대에 무너졌다. 양차 대전을 거치면서 이성에 대한 회의에 빠지면서다. 그런데 한국은 마치 ‘집단 최면’에 빠진 듯 아직도 산업과 기술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유효하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1시간 반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 중에 그의 입에서 ‘기술’이라는 단어는 46차례 등장했다. 그런데 ‘미디어’는 무려 79번, ‘예술’은 99번이나 언급됐다. 이 교수가 “지금이야말로 시를 읽고 배워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이 세 키워드와 상관관계가 있다.

“스마트폰은 누구나 가지고 있어요. 제가 조각가로서 돌을 깎아도,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로 보는 이미지에서 저는 벗어날 수 없어요. 돌의 미학이 아닌 미디어의 미학인 것이죠.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 너머에 있는 맥락이 무엇인지, 비평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해요.”

이진준, Audible Garden, 2023. 지난해 프리즈 런던 기간에 맞춰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개막한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DMC) 홍보관 광장 중앙에 설치된 이진준의 작품 ‘THEY’(2010).

KAIST 아트앤테크놀로지 센터장, KAIST TX 크리에이티브 미디어랩 디렉터, 전 KAIST 미술관장, 한국콘텐츠진흥원 뉴콘텐츠아카데미 특임교수,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전문위원, 제10차 세계문화예술총회(IPAC) 한국 대표, 그리고 뉴미디어 아티스트까지.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 이렇게나 다채롭지만 그를 마주해본 이들이라면 또 하나의 수식어를 마음에 그려 넣게 된다. 바로 ‘성찰자’다.

이 교수는 세상을 바르게 인식하는 ‘깨어 있음’이 수반돼야 인공지능(AI) 등 기술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그가 학제적 연구와 더불어 규범과 AI 거버넌스 정립을 위한 국제사회 논의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그가 뉴미디어 아티스트로 선보이는 작품도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담론으로 끌어내려는 동시대성 작업이 주를 이룬다. 미디어의 급속한 확산이 우리 세계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다른 렌즈로 바라보거나 실재 세계와 가상 세계 사이의 경험 격차를 표현한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안경, 자동차 등 지금껏 기술이 인간의 지각을 확장시켜온 것은 사실”이라며 “그런데 기술 위에 있는 자본의 시스템이 그 방향을 오도했다”고 지적했다. 자본은 예술과 창의성의 영역도 침범했다. 그는 “작가가 기업의 하청업체가 돼 있고, 기획자는 기업의 직원으로 가 있다. 비평가는 사라졌다”며 “오늘날 우리는 미디어 너머에 있는 조작된 신화나 숨겨진 시나리오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을 더욱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진준, Wandering Sun Series, 2024.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전시 ‘옥상 프로젝트 2024, 여기!’에서 마주할 수 있다.
이진준, Insomnia, 2006.

이러한 시대적 위기를 반영해 내년 5월에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문화예술총회의 세 가지 대주제도 ▷지식 체계와 주체 ▷참여 체계와 유대감 ▷디지털 체계와 기술 등이다. 총회는 세계 각국의 문화예술 및 유관기관의 정상들과 의사결정자들이 모여 당면한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한국 대표를 맡고 있는 이 교수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자본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목소리를 낼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 내년 5월에는 전 세계의 예술가, 연구자, 학자, 디자이너, 엔지니어, 이론가 등이 모여 전자예술과 관련 주제를 논의하고 작품을 선보이는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도 서울에서 열린다.

사실 그가 미디어아트에 천착하는 까닭은 따로 있다. 미디어아트는 서구 지배의 역사가 사실상 없는 미개척 매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1960년대 후반부터 오노 요코, 캐롤리 슈니먼, 애나 멘디에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 여성 예술가들이 행위 예술을 극단으로 밀고 나갈 수 있었던 맥락과 유사하다. 당시 이들은 회화나 조각과 달리 남성 지배의 역사가 길지 않은 새로운 예술 형식에 눈을 돌렸다.

이 교수는 “예컨대 회화에서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짜인 서구의 프레임이 있다. 한국의 회화가 결국 서구 사회에 ‘끼워지는’ 방식으로 인정을 받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그런데 미디어아트 분야는 그렇지 않다.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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