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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亞 ‘여성미술 60년사’ 총망라…비엔날레급 전시 ‘접속하는 몸’ [요즘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접속하는 몸…’ 전시
1960년 이후 아시아 女작가들 작품 모아
11개국 60여명 참여…"비엔날레급 규모"
샤오루, 대화, 1989,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분 5초.
국립현대미술관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에서 만난 샤오루.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1989년 2월 5일, 젊은 대학원생 미술가 샤오루는 설치 작품의 일부인 거울로 된 벽에 총을 쐈다. 바닥에 흩어진 거울 조각들은 마치 샤오루가 꾹꾹 삼켜온 말들이 터져 흩어진 침묵의 잔해처럼 보인다. 그가 이처럼 급진적인 일을 벌인 건 놀랍게도 중국의 대표적인 국립 미술관인 베이징의 중국미술관에서였다.

이날의 퍼포먼스 기록이 담긴 영상 ‘대화’(1989)는 오늘날 오노 요코의 유명한 퍼포먼스 영상 ‘컷 피스’(1965)와 백남준의 일본인 아내 쿠보타 시게코의 영상 조각 ‘뒤샹피아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裸婦)’(1976)와 한 공간에서 조우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에서다. 그렇게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더 넓은 지대 속에서 그들의 작품이 새로운 서사를 이끌어내기 시작한다.

쿠보타 시게코, 뒤샹피아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裸婦)’, 1976(2019년 재제작).

예술을 칼끝 삼아 속박된 자아를 해방시키려는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여성 예술가들의 각기 다른 몸부림이 한데 모였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시대도 국적도 저마다인 여성 작가들이 마주한 벽은 무엇이었나. 그들이 담아낸 억압의 무게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가. 작품 속에서 터져 나온 감정의 울림을 지켜보는 관객은 단순한 방관자인가, 그 강렬한 저항을 함께 나누는 증인인가. 이처럼 서로 다른 층위의 질문이 끝없이 뻗어나가는 데는, 아시아 주요 미술가 60여명의 작품 130여점으로 채워진 사실상 비엔날레를 방불케 하는 전시 규모 때문이다.

배명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다양한 의미로 정체성을 재구성해 온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 등 11개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동시대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며 “민주화와 반모더니즘, 탈식민이라는 지정학적 맥락 속에서 발아한 아시아 여성 미술에서 어떤 예기치 않은 공명을 발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불 ‘아마릴리스’(1999) 작품 너머로 염지혜 ‘사이보그핸드스탠더러스의 코’(2021), 최재은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자기발생적 유기체’(1995) 작품이 보이는 전경.

전시는 아시아 여성을 하나의 집합체로 인식해 서구 남성의 타자로 바라보는 뻔한 시각에서 벗어난다. 아시아라는 공간에서 여성의 몸에 각인된 개별 경험을 위계없이 다루기 때문이다. ‘삶을 안무하라’, ‘섹슈얼리티의 유연한 영토’, ‘신체·(여)신·우주론’, ‘거리 퍼포먼스’, ‘반복의 몸짓-신체·사물·언어’, ‘되기로서의 몸-접속하는 몸’ 등 여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전시는 아시아 여성 미술이 어떤 사유이기 이전에 여성의 삶에 오랫동안 축적된 신체의 수행과 깊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예컨대 전시장에 걸린 아만다 헹의 12분36초짜리 영상 ‘걸어갑시다’(1997-2001)에는 하이힐을 입에 문 채 뒤로 걸어가는 다섯 명의 여성들이 담겼다. 이들은 작은 손거울을 들고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맨발이었다. 이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일어난 직후 많은 기업이 문을 닫았지만, 미용 산업이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작가가 고안한 퍼포먼스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자란 아라마이아니는 ‘숨겨야 하는 물건’으로 여겨지는 생리대를 벽에 붙인 작품 ‘마음의 생식능력을 막지 마시오’(1997)로, 이불은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에 대한 저항을 기이한 생명체로 은유한 ‘몬스터: 핑크’(1998)로 자유를 품에 안으려 한다.

아라마이아니 ‘마음의 생식능력을 막지 마시오’(1997)와 정정엽 ‘봇물 2’가 나란히 전시된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에서 만난 아라마이아니. 이정아 기자.

이진실 미술비평가는 “최근 페미니즘에서 신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신유물론이나 포스트휴머니즘 담론을 통해 더 새롭고 논쟁적인 화두를 생산하는 것 같다”며 “이 화두들은 여성 신체를 단순히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차원이 아니라 더 구체적인 현실 안에, 즉 성차 및 젠더, 인종, 계급,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나아가 ‘인류세’라는 더 복잡하고 절실한 시공의 맥락 안에 재배치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시는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시공에서 태어난 작품들이지만, 그 안에는 한계를 넘어선 인간 해방의 구체적인 서사가 깃들어 있다. 관객은 이들 작품이 던지는 질문을 통해 여성 예술이 단순한 미적 표현을 넘어 사회정치적 맥락을 비추는 거울이자, 자유를 향한 개인의 선언임을 발견하게 된다. 또 작품들이 남긴 자취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헤아리지 못한 삶의 깊이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된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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