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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째 딸 수미타 김의 ‘뚝심’…‘찬란한 전설’ 천경자, 고향으로 귀환 [요즘 전시]
탄생 100주년 맞아 고향 고흥에서 특별전
수미타 김이 두 달여간 발품팔아 출품 약속
백미는 원숙한 색채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고흥군]
‘찬란한 전설,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예술총감독을 맡은 천경자 화백의 차녀 수미타 김.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고흥)=이정아 기자] “애썼다.”

‘만약 어머니가 전시를 보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 것 같냐’는 질문에, 수미타 김(김정희·70)이 짧은 한숨을 토해낸 뒤 담담히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독과 한의 작가’로 기억되는 고(故) 천경자(1924~2015)의 둘째 딸이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작가의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보기 드문 전시가 열렸다. 천 화백의 생일인 지난 11일에 맞춰 전남 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서 개막한 ‘찬란한 전설,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다. 이 전시의 예술총감독을 맡은 이가 바로 수미타 김이다. 그는 미국 몽고메리칼리지 미술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전시를 위해 6개월간 학교를 휴직했다.

수미타 김은 두 달여간 직접 발품을 팔아 이번 전시에 대여 설치할 전국 곳곳의 작품들을 찾아다녔다. 골목골목마다 살아 숨셨던 어머니를 만나는 여정이었다. 그렇게 한자리에 모인 58점의 그림들이 주로 개인 소장가들이 가지고 있던 채색화, 담채화, 드로잉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남다르다.

최초 공개된 작품으로 추정되는 뮤지엄 산 한솔재단 소장품부터 부국문화재단, 금성문화재단, 프리마 컬렉션에 이어 권미성, 김생기, 장기원, 천호준 등 개인 소장작까지 작품 면면이 다채로워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사이가 돈독했던 소설가 박경리와 주고받은 친필 편지, 작가가 펴낸 수필집 등 각종 출판물, 해외스케치 여행 중 작가 사진 등 천 화백의 내밀한 정서를 조근조근하게 펼쳐놓은 전시 구성으로 누구나 천 화백의 작품세계를 친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찬란한 전설,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전시 전경. [고흥군]
천경자, 길례언니II, 1982. [고흥군]

수미타 김은 “제가 도록이나 실제로 본 적 없는 작품은 전시하지 않았다”면서 “(소장자를 찾아다니다가) 위작을 진품으로 믿고 계신 분을 만났는데, 워낙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이 큰 분이라, 작품이 가짜라고 말을 못 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번 전시에 서울시립미술관 소장작이 출품되지 못한 것에 대해선 “(미술관 측으로부터) 유가족 모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작품 대여가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1998년 말께 천 화백은 주요 대표작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바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챙 넓은 모자를 쓴 여인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하는 ‘길례언니II’(1982)가 관객을 맞는다. 고흥 지역 미술사가의 증언에 따르면, 화폭 속 여인은 천 화백이 졸업한 고흥초등학교의 졸업상 명단에 기록된 임길례라는 실존 인물이다. 그는 천 화백보다 3년 선배인데, 훗날 소록도의 간호사가 됐다.

천경자, 정(靜), 1955. [고흥군]

이내 먹구름이 드리워진 천 화백의 1950년대 광주 시절이 펼쳐진다. 사글세로 얻어 들어간 주인집이 팔려 집에서 쫓겨나갈 판국에 그린 100호 크기의 ‘정(靜)’(1955)이 대표적이다. 천 화백은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에서 이 작품을 가리켜 ‘시든 해바라기 밭에 검은 고양이를 안고 홀로 앉아있는 계집아이를 울면서 그려 제목을 지었다’고 했다. 이 그림은 1955년 제7회 미협전람회에 출품해 대통령상을 받게 됐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작가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마구 울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20여 년만에 관객과 처음 만난 120호의 대작 ‘제주도 풍경’(1956)은 소장자인 뮤지엄 산 한솔재단이 여태껏 ‘섬의 인상’이라는 제목으로 알고 있었던 그림이다. 수미타 김은 “1956년 국전에 출품된 작품인데, 당시 기록된 조그마한 그림 사진에서 출처를 새로 알게 됐다”며 “이런 작품은 정말 귀하다”고 설명했다.

생전 천경자 화백의 모습. [고흥군]
천경자, 아이누여인, 1988. [고흥군]

전시의 백미는 주체적 여성으로 살아낸 작가의 강인한 정서가 원숙한 색채로 빛나는 작품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이다. 칠흑같은 어둠에서도 신비로운 광채를 내는 한 여인, 그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가 마치 불안하고 격정적인 탱고 선율처럼 허공을 가른다. 이 작품에 대해 수미타 김은 “어머니는 오전 6시에 커피 한 잔하고 시작한 작업을 4~5시경에 마쳤다. 그리곤 책장에 기대 그림을 보며 담배 하나 피어물고 맥주 한 잔 드셨을 것”이라며 “그렇게 내일 무엇을 그릴지 구상하는 시간이 어머니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작가의 모든 작품이 어떤 장르를 넘어선,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전시를 계기로 고흥군은 천경자 기념관 건립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천경자 생가의 복원, 천경자 이름을 딴 예술의 길 조성 등 헌정 사업이 추진 중이다. 고흥군은 지난 2008년 천경자 미술관 설립을 추진하다가 포기했었다. 관리 소홀로 작품이 훼손되는 불상사가 생겨 그의 첫째 딸인 이혜선 씨가 기증한 작품들을 반환받기까지 했다.

이에 수미타 김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지만, (2022년 부임한) 공영민 고흥군수의 의지는 다르다”며 “지난해 처음으로 만나 ‘천 화백 관련 기념 사업을 좀 시작해 보자’ 해서 이번 전시를 하게됐다”고 말했다.

앞서 올해 4월 그는 미국에서 비영리재단 ‘천경자재단’을 발족했다. 오는 12월에는 제1회 천경자상 수상 작가를 발표할 예정이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무료 관람.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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